중요한 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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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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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우 칼럼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열렬한 화가 지망생 소년이 있었다. 이 소년은 그림뿐만 아니라 문학이나 음악 등 다양한 예술분야에 소질이 있었으며 역사와 철학에도 관심이 많았다. 길 잃은 강아지를 주워 키우다가 그 강아지가 갑자기 사라지자 며칠 동안 슬픔에 잠기기도 했던 여린 감성을 지녔으며 청소년기에는 목사가 될 꿈을 가지기도 했었다. 그러나 가정환경은 불우했다. 어머니는 병약했고 아버지는 술주정꾼에 매우 권위적이고 포악하여 어머니는 물론 자신까지 상습적으로 매를 맞았다. 소년은 아버지를 증오하며 분노가 억압된 채 성장했다.

그로부터 76년이 흐른 지금, 이스라엘에 가면 야드바셈이라는 역사박물관이 있는데 중앙에는 여섯 개의 촛불이 켜져 있고 그 옆에는 비누 세 개가 놓여 있다. 여섯 개의 촛불은 2차 세계대전 당시 강제수용소에서 나치에게 학살당한 600만 명의 유대인을 의미한다. 세 개의 비누는 가스실에서 죽은 유대인들의 몸에서 뽑아낸 지방으로 만든 비누다. 그 앞에 서면 누구나 인간의 잔인한 만행에 치를 떤다. 화가를 꿈꾸며 여린 감성을 지닌 소년이었지만 아버지의 학대로 분노가 억압된 채 성장한 이 소년이 바로 지구역사를 통틀어 가장 잔인하고 악마적인 인간으로 손꼽히는 아돌프 히틀러다.

만약, 히틀러가 화목한 가정환경에서 아버지의 따뜻한 사랑을 받으며 성장했더라도 그토록 극악한 인간이 되었을까.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인간성을 파괴하는 주된 요인은 어린 시절의 폭력과 학대와 억압이다. 미움 받고 자란 아이가 남을 미워하고, 사랑 받고 자란 아이가 남을 사랑하듯 학대받은 아이가 상처를 치유 받지 못하고 성장하면 분노와 증오를 외부로 표출하는 가해자가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는다. 그럼 누구로부터 상처를 받는가. 나와 무관하거나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상처를 주는가? 그렇지 않다. 멀리 떨어진 뱀은 물지 못한다. 바로 발 옆에 가까이 있는 뱀이 문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지속적인 상처를 입히는 사람들은 우리와 가까운 사람들이다. 가까운 관계에 있는 사람들을 심리학이나 사회학에서 “중요한 타인”이라고 한다. 가족, 부모, 형제, 친구, 스승, 존경하는 인물, 연인, 배우자, 그리고 직장상사나 동료, 선후배 등이 모두 중요한 타인들이다.

가까운 관계가 아니거나 모르는 사람들이라면 다투거나 화를 낼 뿐이지만 마음에 상처를 받지는 않는다. 마음에 상처를 입히는 사람들은 주변의 사람들이다. 연인은 애인에게서 상처를 받고, 부부는 배우자에게서 상처를 받으며, 직장에서는 동료들에게서, 친구지간에는 친구들로부터 상처를 받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삶속에서 가까이 있는 사람들을 가장 존중하고 배려하며 관용해야 한다.

특히 자녀가 가장 상처를 많이 받는 대상은 아이로니컬하게도 부모이다. 생존을 절대적으로 부모에게 의존해야 하는 아이들은 부모의 모습을 무비판적으로 모방하고 받아들여 자아상과 정체성을 형성하여 평생 동안 가져간다. 부모야말로 자녀들이 앞으로 살아가야 할 인생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영원한 교사들인 것이다. 풍족한 환경의 제공보다 부모의 성실하고 정직한 삶의 모습이 더욱 중요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사람들은 흔히 가까이 있는 사람들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아시는가. 우리가 아파할 때 함께 아파하고, 기쁠 때 함께 기뻐하며, 마음이 외로울 때 의지가 되어주며, 우리가 이 세상 떠나는 날 무덤까지 따라와 꽃 한 송이 올려줄 사람은 지금 곁에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거리에 사람들이 무수히 많아도 당신 곁에 있는 사람들이 없다면 외톨이가 된다는 것을. 이철우 시인/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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