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벌의 늪’에 빠진 기시다, 세가지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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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벌의 늪’에 빠진 기시다, 세가지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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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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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시다 후미오 수상에 거는 기대감은 당혹감으로 변화되고 있다. 기시다 수상이 ‘듣는 힘’을 강조하면서 아베 신조·스가 요시히데와는 다른 외교 스타일에 한국은 기대를 걸었다. 하지만 기시다 수상 시대에서는 위안부, 강제징용 등 과거사 문제 해결이 난조를 보이는 가운데 양국 관계는 대화조차 어려운 불통의 상황이 됐다. 게다가 일본은 국제무대에서조차 한국에 대한 불신을 여과 없이 주장하는 형국이 됐다. 일본의 대한 기조는 바뀌지 않았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우리는 기시다 수상보다는 일본의 정치환경이 대한 정책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흔히 아베주도의 일본정치를 연상하여 기시다 수상도 정책을 주도할 것이라고 오해하는 경향이 있다. 현재 일본 정치권의 분위기는 대한 강경파들이 득세하는 상황이다. 특히 자민당은 일본 국민여론보다 한국에 더 큰 불신을 갖고 있다. 지금까지 일본이 한국의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인 결과 일본이 수세에 몰렸다고 생각하는 경향마저 있다.

자민당은 한국과의 협상에는 응하지 말아야 하며 한국이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인식이 강하다. 자민당으로부터 압박을 받는 일본 정부는 한국의 과거사 주장을 무시할 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에서 한국과의 대결을 마다하지 않고 있다. 더욱이 기시다 수상은 내년 참의원 선거전까지 성공적인 정권 운영을 위해서는 자민당의 강경 분위기를 거스를 수 없게 됐다.

기시다 수상의 행보를 보더라도 자민당 내 파벌 정치에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 기시다의 특징은 대담함보다 신중함이 눈에 띈다. 기시다는 여당과 정책조율을 원활하게 하는 것이 정권을 안정시키는 지름길이라고 본 것이다. 이런 자세는 지난 11월 26일 여당의 경기부양책 논의에서 선명하게 나타났다. 기시다는 내년 여름 참의원선거를 고려해 여당 자민당과 공명당의 요구를 최대한 받아들였다.

자민당은 아베 시대와 마찬가지로 적극재정을 추진할 수 있게 돼 만족했다. 아베 정권이나 스가 정권에서는 경제대책과 예산편성은 수상관저가 주도했다. 그러나 기시다 정권하에서는 예산 편성의 주도권을 여당 자민당에 많이 넘겨줬다. 기시다는 자민당의 의견이 반영되기 어려운 ‘정고당저’로부터의 탈피를 선언해 여당 자민당을 존중하는 ‘정고당고’로 정책결정 과정을 변화시켰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파벌의 영향력을 극복하지 못한 기시다의 정치 상황과 연관돼 있다.

기시다 수상관저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약해 자민당의 예산편성 개입을 인정한 것이다. 그렇다고 기시다에게도 불리한 것은 아니다. 기시다는 자신의 색깔을 낼 수 있는 분배정책에 많은 지원을 할 수 있게 됐다. 이번 예산편성은 기시다와 자민당이 서로 타협해 윈윈하는 상황을 만든 것이다.

그 결과 국내 현실을 감안한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보다 중의원 선거에서 자민당과 공명당이 내건 공약 실현을 우선시하는 모습이 나타났다. 실제로 경제대책은 여당의 간판정책으로 가득 차 있다. 그리고 경제대책의 재정 지출 규모도 55.7조엔으로 과거 최대의 재정규모가 됐다.

가스미가세키나 경제계에서는 ‘너무나 과하다’라는 비판이 강하지만, 기시다는 내년 참의원 선거를 위해 정치적 고려를 받아들였다. 경제대책을 포함하는 대규모 재정지출에는 본래 그것을 뒷받침하는 재원의 확보가 필요하다. 그러나 이번 추경예산안에서는 세입의 60%를 국채 발행으로 충당했다. 코로나 대책으로 대형 경제 대책, 예산 편성을 계속한 아베·스가 정권과 마찬가지로 국채 의존의 상황이 계속됐다. 국가의 재정 상황보다는 선거대책이 우선한 결과였다.

기시다 정권이 안정적으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세 가지 길이 있다. 첫째 수상이 카리스마를 가진 권력 정치가로 변모하는 것이다. 그 모델은 나카소네이다. 나카소네 내각이 출범 당시는 다나카소네 내각로 불렸지만, 나카소네 수상은 탈 다나카 카쿠에이를 성공하여 장기 정권을 이끌어냈다.

둘째 자민당의 파벌을 내편으로 만드는 방법이다. 오부치 수상은 낮은 지지율로 출범해 인품을 무기로 자민당을 장악했다. 유행어 대상을 받았던 ‘부치폰’(ブッチホン: 오부치 전화로 자민당내에서 전화를 안 받아 본 국회의원이 없을 정도)도 기시다 수상이 강조하는 ‘듣는 힘’과 일맥상통하다. 기시다 수상이 할 수 있는 것은 소통을 무기로 같은 파벌의 뿌리를 갖고 있는 아소파와 다니가키 그룹을 포섭해야 한다.

셋째 자신의 정책을 실현하여 지지를 높이는 길이다. 고치카이의 선조인 이케다 하야토는 아베의 조부인 기시 노부스케의 대결형 정치를 화합형 정치로 변환시켰다. 이케다의 소득 배증정책이 정권을 성공으로 이끈 것이다. 기시다 수상이 내건 ‘레이와판 소득배증’ ‘새로운 자본주의’의 구상은 이케다의 길을 연상시킨다.

세 가지 길은 쉽지만은 않다. 전후 자민당 내에 온건파가 다수인 시절에도 고치카이(온건파)의 전임 수상들은 모두 성공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중의원과 참의원 동시 선거 도중에 사망한 오히라 전수상, 자신의 정책을 실현하지 못한 채 퇴임한 스즈키 전수상, 중의원 선거에서 패배하여 퇴진하지 않을 수 없었던 미야자와 전수상 등을 보더라도 알 수 있다.

기시다 수상은 오부치 게이조 전수상과 이케다 하야토의 두 모델을 합친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다만 이들은 일본 정치에서 많은 공적이 있지만, 한일관계 개선에도 노력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기시다가 내년 참의원선거에서 안정적인 의석수를 확보하게 되면 2025년 참의원 선거까지 국정 선거가 없다. 이때라도 기시다 수상이 성공한 수상들처럼 한일관계 개선에 적극적이기를 기대해 본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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