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표지석 소동은 코미디
노무현 대통령이 작년 10월 평양 정상회담을 기념한답시고 나무를 심은 것까진 그렇다 치자. 그런데 이름 석자 새긴 돌덩이 하나 때문에 대한민국 대통령과 그 밑의 국정원장이 인간적으로 망신을 당하는 건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덩달아 대한민국까지 웃음거리가 되는 건 참기 힘들다. 그렇지 않아도 봉하마을과 숭례문 때문에 흉흉하던 민심은 평양 표지석 소동을 언급하면서 “미친…나쁜…”이라는 단어를 서슴없이 내뱉는 지경이 됐다. 도대체 `표지석 소동’의 전말은 무엇인가. .
오매불망 갈망하던 평양엘 가게 됐다, 남북정상회담 못하고 끝내나 했는데 임기말에 드디어 한건 하는구나, 김대중 전 대통령처럼 노벨평화상은 타지 못할망정 이게 어디냐. `별놈의 보수’인가 하는 작자들이 뭐라 하면 “민족 대사 앞에 아직도 그런 작태를 논하느냐” 한마디 하면 된다, 그렇지 않아도 워낙 한 게 없다고 잃어버린 10년이니 뭐니 난리들 피우지 않는가. 옳거니, 나무 하나 심고 그 옆에 표지석 세우면 자연스럽게 목적 달성되지 않겠는가.
그렇게 해서 난색을 표하는 북한을 달래 250kg 이나 하는 돌덩이에 근사하게 `대한민국 대통령 노무현’이라고 새겨 들고 갔는데 그게 그만 북쪽 사람들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어 그냥 가져오고 말았다.
그 이름 석자가 뭐라고 국민 눈을 속여 가며 돌덩이를 평양까지 싣고 가고 국정원장이란 사람이 표지석 설치 문제로 왔다 갔다 했다. 그 과정에 들어간 국민세금은 또 얼마인가. 그처럼 `깜도 안 되는 일’로 평양을 들락거린 국정원장이나 시킨 사람이나 “진짜 세금폭탄 아직도 멀었다”고 협박하면서도 막상 자기들은 세금 아까운 줄 모르고 펑펑 써댄 꼴이다.
그런데 처음 가져갔다는 것은 멋스런 자연석에 근사하고 당당하게 새긴 글씨가 그럴싸한데 나중에 바꾼 건 크기도 확 줄어든 초라한 몰골에 보기에 민망하다. “하나된 민족의 염원을 담아, 2007년 10월 평양, 대한민국 대통령 노무현”과 “하나된 민족의 염원을 담아, 2007. 10.2-4. 평양 방문기념, 대한민국 대통령 노무현”이라는 글은 얼핏 보면 그거나 그거다.
결국 가운데의 `2007년 10월 평양’이 `2007.10.2-4. 평양 방문기념’으로 바뀌어져 있다. 그게 그 말 아니겠냐고 하겠지만 전자는 “내가 왔노라, 평양을 보았노라, 그래서 여기에 징표를 남기노라” 하는 식으로 제법 의젓하다. 김일성과 김정일 이외에는 감히 누구도 내로라 하고 나설 수 없는 체제에 익숙한 북한 사람들이 보기에 따라서는 “뭐야 이거, 저희들이 평양을 점령이라도 했단 말이야. 수령님처럼 행세하려 들다니”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거기에 비해 후자는 그저 “대한민국 대통령 노무현이란 사람이 허락을 받아 평양을 잘 구경하고 갑니다. 그 영광스러움과 황공함을 기념하기 위해 이 표지석을 세웁니다” 라는 정도의 뉘앙스가 읽혀진다.
사람들이 숭례문 소실을 안타까워하는 건 당연하다. 그러면서 동시에 마치 나라를 잃은 것 같은 형언할 수 없는 참담함과 분노를 느끼는 건 또 다른 측면에서 이유를 찾을 수밖에 없다. 문화재를 방치해 불타게 만든 처지에 봉하마을 단장 소동을 벌이는 행위가 그렇다. 또 무슨 대단한 일 했다고 평양에 이름 새긴 돌덩어리를 싣고 가 퇴짜 맞고 그 소동을 벌이는 대통령에 대한 울분의 표출이기도 한 것이다.
돌덩이에 새긴 이름 석자 때문에 국정원장을 머슴 부리듯 한 대통령은 서울엔 집이 없어 25일 하룻밤을 청와대에서 더 묵겠다고 한다. 그럴 수 있겠다 싶다가도 “서울에 두 사람 잠잘 공간이 없나, 그 많은 친구와 노사모들은 다 어디 갔나, 서울엔 깨끗한 여관도 있고 호텔도 많은데 그런 데서 자면 어디 덧나나” 하는 생각도 든다. 표지석 소동을 해명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청와대 대변인의 거짓말도 국정원장이 특정 언론에 흘린 바로 그 사진으로 덜미를 잡히고 말았다니 정말 코미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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