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J, 토니상, 그리고 브로드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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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J, 토니상, 그리고 브로드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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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2.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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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크고 작은 많은 ‘상’(賞)이 있다.

노벨상, 아카데미상, 그래미상, 에미상, 토니상, 프리츠커상, 필즈상, 베서머상, 우드로 윌슨상, 퓰리처상, 맨부커상, 안데르센상, 호암상, 아산상, 만해상, 동인문학상, 이상문학상….

미국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한 임윤찬에 이어 한국인 최초로 필즈(Fields)상을 허준이 프린스턴대 교수 이야기가 온통 화제다.

세상에 존재하는 최고 권위의 상은 뭐니 뭐니 해도 노벨상이다. 노벨상의 권위는 다음과 같은 관용어구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프리츠커상은 ‘건축계의 노벨상’, 안데르센상은 ‘아동문학계의 노벨상’, 필즈상은 ‘수학계의 노벨상’ 하는 식이다.

일본 건축가는 ‘건축계의 노벨상’을 8명이나 받았지만, 한국 건축가는 아직 프리츠커상과는 인연이 닿지 않았다. 안데르센상은 최근 그림작가 이수지가 받은 바 있다.

뮤지컬과 연극에서 최고 권위의 상은 단연 ‘토니상’(Tony Award)이다. 토니상은 작품성과 대중성을 보증한다는 인증서와 같다.

최근 마이클 잭슨(1958~2009)의 음악과 생애를 다룬 뮤지컬 ‘MJ’가 토니상 4관왕을 차지했다. 남우주연상을 비롯해 안무상, 조명 디자인상, 음향디자인상을 받았다.

‘빌리진’ ‘배드’ ‘댄싱 머신’을 비롯한 25곡이 나온다고 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문 워크’(Moon Walk)도 등장한다. 가수 스티비 원더(1950~)가 “만일 눈을 뜨면 딸의 얼굴과 함께 꼭 보고 싶다”고 한 그 문 워크다.

오는 12월 블루스퀘어에서 막을 올리는 ‘물랑루즈’는 2021년 토니상에서 최우수작품상을 비롯해 10개 부문을 휩쓴 뮤지컬이다. 파리 몽마르트르에 있는 극장식 식당 ‘물랑루즈’는 스토리 텔링의 저수지다. 이미 같은 이름의 영화로도 몇 번 나왔다.



배우와 연출가들이 사랑하는 사르디 레스토랑



토니상 시상식 장면 / 사진출처 = 토니상 홈페이지
토니상은 1947년 브로드웨이에서 만들어졌다. 토니상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공간이 있다.

‘사르디’(Sardi) 레스토랑이다. 캐리커처 레스토랑이라는 별칭으로 더 유명한 이곳에서 브로드웨이의 영향력 있는 프로듀서이자 연출가인 브록 펨버튼이 제정한 상이 토니상이다.

‘토니’는 동료 제작자이자 여배우인 ‘마리 앙투아네트 페리’(Mary Antoinette Perry·1888~1946)에서 이름을 따왔다. 그의 애칭이다.

이름만 봐서는 프랑스 루이 16세의 왕비와 혈통적으로 무슨 관계가 있어 보이지만 연관성은 없다.

토니는 콜로라도주 덴버에서 태어났다. 외삼촌과 이모가 순회극단의 유명 배우였다. 어린 시절 외삼촌과 이모를 보면서 막연히 배우의 꿈을 키웠다. 열한 살 때 엘리츠극장에서 처음으로 무대에 섰다.

아버지 윌리엄 페리는 딸이 배우가 되는 것을 못마땅해 했다. 하지만 음악을 배우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하지 않았다. 토니는 뉴욕으로 가 ‘미스 엘리스 스쿨’에 입학해 피아노와 노래를 배운다.

1906년, 당대의 배우 데이비드 워필드가 토니의 재능을 발견한다. 토니는 열여덟 살에 브로드웨이 연극판에 데뷔한다. 한동안 워필드 극단의 주연 여배우로 브로드웨이에서 활동한다.

토니는 1908년 덴버로 돌아가 고향의 연극무대에 선다. 고향에서 배우로 이름을 날리던 중 사업가 프랭크 프루어프를 만나 가정을 꾸린다.

결혼과 함께 연극무대와는 멀어졌다. 두 사람은 딸 셋을 낳는다. 행복했던 가정생활은 1922년 남편이 돌연 심장마비로 사망하면서 끝이 난다.

그런데 사별의 눈물이 마르자 토니에게 새로운 길이 보였다. 뉴욕 브로드웨이 연극무대로 돌아가기로 한 것이다.

브로드웨이에서 일류 배우로 활약하던 1928년, 토니는 연출에 뛰어들기로 결심한다. 그때까지 여성 연출가는 한 명도 없었다.

무대 뒤에서 여성들은 대부분 의상 담당을 하고 있던 때였다. 미국 최초의 여성 연출가 토니는 이렇게 탄생했다.

토니는 브로드웨이의 실력자 펨버튼과 손을 잡는다. 두 사람은 여러 편의 연극을 제작해 무대에 올렸고, 큰 성공을 거둔다. 2차세계대전 중 펨버튼과 미국연극협회를 창립해 사무총장과 공동회장을 맡았다.

토니는 1946년, 58세 생일 다음 날 심장병으로 눈을 감는다.

펨버튼은 미국연극협회에 토니의 공로를 기리는 의미에서 상을 제정하자고 제안했고, 1947년 토니상이 만들어진다. 토니상은 연극과 뮤지컬로 나누어 남·여주연상, 극작상, 연출상을 비롯해 모두 21개 부문을 수상한다.

배우, 연출가 등의 캐리커처가 벽면을 가득 채운 사르디 레스토랑 내부. 조성관 작가 제공
제1회 시상식은 뉴욕의 유서 깊은 월도프 호텔에서 열렸다.

제1회 시상식에서 신예 극작가 아서 밀러(1915~2005)가 쓴 ‘모두가 내 아들’이 극작상, 연출상(엘리아 카잔)을 2개 부문을 석권했다. 극작가 밀러를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1949년 2월, 밀러의 두 번째 작품 ‘세일즈맨의 죽음’이 브로드웨이 모로스코 극장에 올려졌다. 이 작품은 브로드웨이를 넘어 전미적(全美的) 현상이 됐다.

모로스코 극장에서만 장장 742회나 무대에 올려졌다. ‘세일즈맨의 죽음’은 그해 토니상 최우수 연극상을 받는다.

이 작품으로 밀러는 마침내 유진 오닐, 테네시 윌리엄스의 반열에 올라서게 된다. 우리나라에서도 ‘세일즈맨의 죽음’이 여러 무대에 올랐다.

브로드웨이 모로스코 극장에서 역사적 초연이 있던 1949년 2월10일 밤. 커튼콜이 모두 끝났을 때 밀러 부부, 연출가 엘리아 카잔 부부 등은 극장에서 나왔다.

이들은 극장 네온사인이 반짝거리는 ‘슈베르트 골목’을 지나 44번가 웨스트 234로 향했다. 사르디 레스토랑이다.

모로스코 극장은 현재 마퀴스 호텔이 들어섰다. 그곳은 타임스퀘어 한복판, 브로드웨이에서 가장 복잡한 곳이다. 24시간 LED광고탑으로 휘황찬란한 곳. 뉴욕을 처음 오는 세계인이 반드시 찾는 곳.

나는 연극이 끝나는 시간에 맞춰 마퀴스 호텔 앞에서 밀러의 발걸음으로 사르디 레스토랑을 찾았던 경험이 있다. 책 ‘뉴욕이 사랑한 천재들’에서 밀러 편을 쓸 당시였다.

그날 이후 나는 브로드웨이를 찾는 지인들에게 꼭 사르디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해볼 것을 권하곤 한다.

조성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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