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오랫동안 치매 아버지를 간병해온 아들이 부친과 함께 숨진 비극이다. 고령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시점에 ‘간병’ 부담 문제는 인구절벽 못지 않게 발등에 떨어진 급한 불이자 하루빨리 해결해야 할 숙명적 과제다. 국가가 온전히 책임을 지도록 하는 ‘공공책임 돌봄제’는 도입을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될 긴급한 입법 사안이 됐다.
대구에서 치매를 앓던 아버지를 돌봐온 아들이 17일 부친과 함께 숨졌다. 이날 오전 달서구 월성동 한 아파트 화단에서 50대 남자가 투신해 숨진 데 이어 방 안에서 둔기에 맞아 사망한 80대 노인도 발견됐다. 이들은 해당 아파트에서 함께 사는 부자지간이었고, 모친 사망 후 아들이 치매를 앓는 아버지를 약 15년간 돌봐온 것으로 파악됐다. 현장에는 ‘아버지와 함께 묻히고 싶다’는 유서 형식의 짧은 메모가 함께 있었다.
앞서 지난해 10월 대구에서 중증 장애인 아들을 약 40년간이나 보살펴온 60대 아버지가 아들을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아버지는 다니던 직장까지 그만두고 식사, 목욕 등 아들의 간병을 도맡아왔지만 ‘간병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이 같은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6~2018년 국내 법원 통계에서 병든 가족을 살해하고 극단적 선택을 한 간병살인 건수는 173건에 달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3년 고령자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65세 이상 인구는 949만9900명으로 전체 인구의 18.4%다. 올해 65세 이상이 전 인구의 20%가 넘는 ‘초고령사회’로의 진입이 확실시되고 있다.
‘100세 시대의 재앙’이라고 할 수 있는 ‘간병지옥’을 피하려면 간병을 더 이상 가족의 문제로 접근해선 안 된다. 대략 하루 최소한 12만 원 안팎인 간병인을 쓰자니 감당이 안 되고, 직접 간병을 하자니 멀쩡한 자식의 인생이 망가지는 진퇴양난의 비현실적인 구조다. 간병·간병비 분담을 둘러싸고 형제자매 간 갈등과 분쟁이 생겨 서로 의가 끊어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정부와 국회가 하루빨리 나서야 한다. 여야는 작금의 무한 정치투쟁을 접고, 간병의 ‘공공책임 돌봄 제도’를 신속히 도입해 생노병사(生老病死)의 순환 속에서 고통받는 국민을 지옥에서 구해내야 한다. 이 문제야말로 생생하게 살아있는 민생정치의 핵심 화두다. 소리 없이 국민의 일상을 나락으로 빠트리는 간병 문제 해결에 위정자들은 당장 나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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