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주의 사상은 참으로 매력적이다. 젊은 가슴을 뛰게 만든다. 불평등과 착취의 구조적인 결함을 가진 자본주의를 통렬히 비판하고, 평등과 정의에 대한 약속은 너무 멋지다. 경제적 불평등과 사회적 불공정을 혁명으로 근본적인 사회 변화를 추구하는 공산주의적 좌파 사상은 젊은 내 가슴을 뜨겁게 했다.
나는 비록 운동권 주류가 아닌 단지 대학생과 야학 교사로서 비주류 운동권이었지만 혁명을 향한 열정만큼은 뜨거웠다. 이 가슴을 차갑게 식힌 것은 역설적으로 소련에서 만난 공산주의의 민낯이었다. 70여 년간 공산주의 체제에서 살아온 소련 시민들의 수준은 제3세계보다 못했다. 인간의 얼굴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인간성 말살, 돈에 대한 천박한 탐욕, 가진 자에 대한 질투와 시기심 등은 나를 정말 힘들게 만들었다.
우리가 꿈꿨던 혁명 뒤의 지상낙원은 모스크바에 존재하지 않았다. 소련의 고르바초프 대통령, 옐친 대통령, 푸틴 대통령까지 10여 년을 모스크바에서 유학하며 결론을 내렸다. 모스크바에게 내일은 없다. 인간의 얼굴은 대한민국에 있고, 우리에게 내일이 있다. 그게 내 결론이다.
우암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삶 자체가 기적이다. 그가 태어난 19세기 말은 그야말로 세기말적 구한말이었다. 한 줌도 안 되는 왕족과 양반이 무지몽매한 절대다수 백성들을 착취하던 시대였다. 90%가 넘는 문맹률의 나라에서 무슨 희망이 있었겠는가? 이승만 박사는 니체가 말하는 초인과 같은 선각자이다. 류석춘 전 연세대 명예교수의 말처럼 100년을 내다본 예언자이다.
역사에서 가정만큼 어리석은 것은 없다. 하지만 만약 이승만 박사가 없었다면 조선의 독립은 아예 이뤄지지 않았을 것이다. 일본이 패전했더라도 우리는 영구히 일본의 식민지로 살았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조선의 독립은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 이승만 박사의 치열하고 천재적인 외교전 덕분이다.
설사 일제로부터 독립했다 하더라도 99.9%의 확률로 공산화됐을 것이다. 당시 공산화는 콜레라처럼 대유행이었고, 공산주의의 해독성에 대해 대부분 인지하지 못했다. 심지어 대부분의 미국인들도 소련을 선량한 동맹국으로 믿었다. 당시 남한의 대부분 지식인들은 공산주의 사상으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미국에서 혼자 귀국한 이승만 박사가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한 것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그것은 마치 손흥민 선수 한 명이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11명과 맞서 싸워 이긴 것과 같다. 그 어떤 드라마보다 더 극적이고 감동적인 스토리다. 영화 <건국전쟁>을 보면서 눈물이 흘렀던 것은 이승만 박사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었다. 국부 이승만 박사가 쓸쓸하고 외롭게 이역만리 하와이 땅에서 생을 마감한 것에 대한 연민이었다.
좌파들은 왜 그렇게 이승만 박사를 저주하고 난도질하는 걸까? 무섭기 때문이다. 이승만 박사가 제대로 평가받으면 김일성 주석은 역사적 패륜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한의 지시를 맹목적으로 따르는 종북 좌파에게 이승만 박사는 ‘철천지원수’다. 그들은 역사적 천벌을 받을 것이다. 버네이즈 아마존출판대행 대표 한승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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