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합과 삶의 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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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합과 삶의 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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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4.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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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껍질 속 주홍색 살이 가득하다. 홍합은 후한 인심의 상징이었다. 내가 살던 제주에는 유명한 오일장이 있다. 오일장 한편에는 해장국집이 있는데 가게 한가운데 있는 커다란 솥에서 홍합탕을 끓여 놓고 무료로 제공하곤 했다. 붐비는 시간에 가면 주문하는 데도 시간이 걸리지만 음식이 나오기 전까지 홍합탕의 국물로 허기를 달랠 수 있어 좋았다.

거리에 포장마차가 가득하던 예전 시절에는 검은 홍합껍데기가 가득한 양은 대야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곤 했다. 신선한 바다향기에 이끌려 잠시 발걸음을 멈추었다.

이 시절은 파란색 천막이 많았다. 녹색의 플라스틱 그릇에 기본 홍합탕에 오이와 당근을 기본안주로 주었다. 이렇게 친구들과 가던 포장마차가 있던 자리를 문득 지나칠 때면 잠시 바쁘게 지나가던 생각도 멈춘다. 흙바닥에 파란색 포장마차가 있던 자리는 어디쯤이었는지 주위를 둘러보게 된다.

예전처럼 푸짐하게 홍합을 먹던 기억을 떠올려 보고 싶을 때가 있다. 이태원에는 군만두가 유명한 집이 있는데 홍합만둣국도 팔고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주문를 했다. 만둣국 그릇 하나 가득 홍합을 준다. 먼저 홍합살을 먹고 나서야 만두를 먹을 수 있다. 먹다 보니 빈 그릇에 껍질만 한가득 쌓여 있다.

홍합국물은 다른 국을 끓일 때도 잘 어울린다. 미국에서 일하다 잠깐 시간을 내어 한국에 들어와 가까운 바닷가로 1박 여행을 갔다. 늦은 나이에 요리를 시작한 나에게 친구들은 잔소리 한마디씩 거들었다. 떠들썩하게 밤을 보내고 나서 아침에 숙소에서 나와 새벽시장의 신선한 홍합을 구입했다. 늦잠을 잔 친구들에게 홍합미역국을 대접했다. 진심으로 나를 걱정해 주던 친구들의 얼굴이 새삼 떠오른다.

홍합국물은 깔끔한 다른 조개국물과 달리 달달한 느낌이 있다. 홍합이 주는 단맛은 토마토소스나 매콤한 소스의 맛과 잘 어울린다. 스페인의 파에야에는 홍합육수로 익힌 쌀에 토마토소스와 샤프론의 향이 잘 어울린 음식이다. 육수의 단맛이 쌀에 들어가면서 감칠맛이 밥알에 농축되고 검은 무쇠팬 바닥에 약간 눌으면서 고소함까지 추가된다.

국물의 맛을 포기하고 홍합살 위주로 즐기기도 한다. 홍합을 화이트 와인만으로 뚜껑을 닫고 끓이다가 입이 열리면 불을 끄고 잠시 그대로 둔다. 체에 모두 걸러내고 홍합살만 건져 낸다.

이렇게 홍합이 준비되면 익힌 감자를 깍뚝으로 썰어 파슬리를 듬뿍 넣고 올리브오일과 디종머스타드로 만든 드레싱으로 버무려준다. 재료가 가능하다면 향긋한 펜넬을 채를 썰어 새콤하게 무쳐 곁들이면 더욱 좋다. 부재료로 방울토마토도 넣어주면 홍합을 이탈리안 스타일 감자샐러드로 즐길 수 있다.

어떤 방식으로 먹더라도 요즘 홍합을 요리할 때 이점은 눈여겨볼만 하다. 홍합 1개는 바닷물을 하루에 9리터 정도를 빨아들이고 내뱉는다. 이런 습성으로 바닷물 속 양분을 섭취하지만 오염된 바다물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따라서 홍합을 살짝 익히고 나서 국물을 걸러줄 때 고운 망이나 소천 등으로 천천히 이물질을 걸러주는 것을 권한다. 홍합 바깥쪽은 물론이고 입을 벌려 익은 홍합은 살 안쪽을 흐르는 물에 씻는 방법도 좋다.

봄이 오기로 하다 잠시 한템포 쉬는지 막바지 추위가 몰려오곤 하는 요즘이다. 오늘 저녁에는 홍합을 요리하며 몸을 따뜻하게 녹여보면 어떨까? 지금보다 훨씬 더 추웠지만 마음만은 따뜻했던 예전 시절을 잠시 떠올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전호제 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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