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장기요양보험은 시작됐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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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장기요양보험은 시작됐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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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8.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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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 鎬 壽/편집국장
 
 프랑스 패션잡지 `엘르’의 편집장이었던 장 도미니크 보비는 `잠수종과 나비’라는 자전적 소설을 남겼다. 이 소설을 바탕으로 한 같은 이름의 영화가 얼마 전 국내에서도 상영돼 관객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안겨주었다. 부와 명예로는 남부러울 것이 없었던 보비는 어느 날 갑자기 전신마비 환자가 되었다. `감금 신드롬’이라는 희귀병이었다.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왼쪽 눈꺼풀 뿐. 언어치료사가 알파벳을 읊으면, 그는 말하고 싶은 철자에 눈을 깜박여 의사소통을 했다. 그의 몸은 잠수종(潛水鐘·철교공사를 할 때 물 속에서 작업할 수 있도록 만든 종 모양의 물건)속에서처럼 갇혀 있어야 했지만, 영혼은 나비처럼 자유로웠다. 보비는 1년 3개월 동안 20만 번 이상 눈을 깜빡인 끝에 이 소설을 완성시켰다고 한다. 그는 절망의 끝자락에서 희망을 노래했고, 죽어가면서도 “고맙다”는 말을 남겼다.
 그런데 보비가 유명인사가 아니고 그저 그런 사람이었다면 멋진 병원에서 훌륭한 의료진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을까. 더욱이 죽음을 앞두고 소설을 쓸 엄두라도 낼 수 있었을까. 프랑스가 아니고 한국이었더라면 가능했을까. 이런 의문을 던지는 사람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알츠하이머병을 앓았던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의 아들 론 레이건 씨는 뇌질병의 무서움을 알리기 위해 일종의 `홍보대사’역을 맡아 활동하고 있다. 그는 얼마 전 `월드사이언스 포럼’참석차 한국을 찾아 “아버지의 경우 국가 지도자였고 상대적으로 부자였기 때문에 집에서 머물며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고 솔직하게 밝혔다. 그는 “대부분의 알츠하이머 환자는 요양원에서 치료를 받는 것이 미국의 현실”이라며 “국가와 사회가 환자를 위한 최선의 의료제도를 제공하고 있는지 돌아봐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우리나라에서도 노인요양 시설이 최근 크게 늘어났지만 보통 사람들의 경제력으로는 여전히 힘에 부친다. 국내 치매 환자는 2007년 기준으로 36만 명이다. 대한치매학회는 노인 인구의 증가 추세로 미뤄 2020년에는 70만 명으로 꾸준히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2020년 치매유병률이 9% 수준이라면, 65세 이상 노인 10명 가운데 1명꼴로 치매에 걸린다는 이야기다. 노인성 질환인 중풍이나 말기암을 포함하면 장기 요양을 필요로 하는 환자는 훨씬 많을 것이다. 만약 내 부모가 치매나 중풍에 걸리거나 본인이 보비처럼 희귀병에 시달리게 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소개한 치매 환자 가족들의 사연만 해도 예사롭지 않다. 치매에 걸린 시부모를 간병하느라 지칠 대로 지친 며느리가 이혼할 것을 고민한다든가, 낮 시간에 돌볼 가족이 없어 직장과 집을 오가며 아버지를 간병하던 가장의 피곤한 삶을 듣노라면 가슴이 저민다. 각종 노인성 질환에 대한 치료와 요양을 환자 개인 또는 가족의 몫으로 맡겨버린 게 우리 의료복지의 현주소임을 부인할 수 없다. 지난 7월부터 노인장기요양보험 제도가 시행됐다. 국민건강보험, 국민여금, 산업재해보험, 고용보험에 이어 새로운 사회 안전망이 설치된 셈이다. 정부는 물론 국민 개개인의 부담도 적지 않다. 건강보험료의 4.05%를 더 부담해야 한다. 장기요양을 필요로 하는 노부모를 모신 가정은 든든한 후원자를 만난 셈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새로운 부담이 된다. 그런데 장기요양보험이 시행된 후 총 인구의 0.3%,노인 인구의 3.1%에 불과한 16만 명에게만 혜택이 돌아간다고 한다. 대한치매학회가 파악한 2007년 기준 치매환자 36만 명은 물론 2020년 70만 명에는 턱없이 부족한 숫자다. 노인장기요양보험이 시작되면서 이미 혜택을 받아왔던 기초생활수급자의 상당수는 등급 판정에서 탈락돼 혜택을 받지 못하게 됐다.
 장기요양 보호가 필요한 환자 72만 명 가운데 56만여 명이 탈락돼야 할 처지다. 한정된 예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이해할 수도 있지만, 요양보험의 사각지대라고 할 수밖에 없다. 노인 요양시설이 들어설 지역주민들이 혐오시설이라며 집단민원을 제기하고 있는 것도 안타깝기는 마찬가지다. 프랑스의 보비나 미국의 레이건 만큼은 아니더라도 우리의 노인들도 삶을 안락하게 마무리할 권리가 있다. 그래야만 그 자식들의 삶도 여유로워 질 것이다. 보비같은 인간승리의 사례가 우리 어르신들 가운데서 나올 수도 있는 일 아닌가. 미리 꼼꼼하게 준비하면 `사회적 효(孝)’를 얼마든지 실천할 수 있다.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10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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