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또 청와대 경호실장으로 전 대통령을 극진히 모시던 장세동씨도 후계자 반열에 올랐다. 경호실장에 이어 안기부장으로 발탁되자 가능성은 더 높아졌다. 장씨는 경호실장 시절 노태우씨를 박대한 사실도 있어 전 대통령이 노씨 차단과 견제용으로 기용했다는 설도 파다했다.
후계자로 꼽히던 노 총리와 장 부장이 당시 어떤 생각을 했는지 모른다. 후계자로 지목되면서 “내가 차기 대통령이 된다면...”하는 꿈을 꿨을지도 모른다. 다만 확실한 것은 후계자 설이 유력해지자 노신영, 장세동 두사람의 행동이 신중해졌고, 때로는 전 대통령에 대한 충성심이 또렸해졌다. 몰론 노태우 진영은 불쾌한 마음을 숨기느라 마음고생을 했을 테고.
집권자에 의해 후계자로 꼽히거나, 집권자의 머리 속에 특정인이 새겨져 있을 때 그 사람들은 들뜨기 마련이다. 좀더 충성을 다해 후계자로 낙점받기 위한 당연한 몸가짐이라 할 수 있다. 이런 현상은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으로 내려오면서 바뀌지 않았다. 대통령의 간택과 이에 따른 지원이 차기 정권 장악에 결정적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청와대 모임에서 열린우리당 김근태 의장 등을 앉혀 놓고 `외부 선장론’을 입에 올렸다. 열린우리당이 깨지지 않고 유지된다면, 혹시 당내에서 유력한 대권주자가 안나오면 후보감을 밖에서 영입할 수 있다는 얘기다. 김근태· 정동영 의장 등 차기 주자들의 얼굴이 어떻게 변했을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그러자 `외부 선장 감’으로 고건 전 총리와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 재야의 박원순 변호사 이름이 즉각 떠올랐다. 확대 해석하면 이들이 노 대통령의 후견으로 집권당 후보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과거 같았으면 이들에겐 영광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 3인이 보인 반응은 반대다. “열린우리당에 들어간다는 생각을 한 바 없다”(고건), “정치를 한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정운찬), “노 대통령과 친한 사이도 아니다”(박원순)는 말로 거리를 뒀다. 열린우리당 후보로 거론되는 것 자체를 부담스러워하는 눈치들이다.
왜 이렇게 됐을까.
그건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 지지도가 곤두박질 치고, 각종 선거에서 참패에 참패를 거듭하면서 룞노무현 호`와 ’열린우리당 호`에 승선하는게 위험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수 있다. 지방선거 참패에도 반성하기는 커녕 민심에 역행하고, 7·26 재보선에서도 전패해놓고 아무 말도 없다가, ’세금폭탄` 발언으로 국민 속을 긁어놓은 김병준 전 청와대 정책실장을 교육 부총리로 밀어붙여 국민들 등을 더 멀리 떠다미는 행태가 이들의 마음을 얼어붙게 만들었을 것이다.
노 대통령이 얼마나 답답했으면 `외부 선장론’을 꺼냈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도 아니다.
김근태 정동영 천정배 등 당내 인사들의 지지도가 한자리에 불과한 상황이 갑갑했을 수 있다. 또 김근태 의장이 사사건건 도발하는 것도 그냥 넘어가기 어려웠을지 모른다. 이러다 정권이 한나라당으로 넘어가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다. 그렇게 되면 보통일이 아니다. 자신이 `실패한 대통령’으로 낙인찍힐지도 모르고 정치보복도 마음에 걸릴 것이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정권을 재창출해야 한다.
그러나 노 대통령의 방식을 고치지 않는한 `외부 선장론’은 현실화될 가능성이 희박하다. 노 대통령이 후계자를 밖에서 영입할 수 있다지만 열린우리당에서는 “노 대통령 탈당을 먼저 요구할 수도 있다”고 결별을 준비하는 발언이 속출하고 있는 지경이다. 무엇보다 과연 누가 가라앉기 시작한 배에 올라 타려 하겠는가. 배 다운 배를 먼저 만드는 게 순서 아닐까? 오죽하면 노 대통령과 각을 세우고 당밖을 기웃거리는 열린우리당 의원들의 행태를 `난파선에 탄 탄돌이’(노 대통령 탄핵 덕에 무더기로 국회의원이 된 열린우리당 의원들)라고 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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