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독립운동의 성지`자리매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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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독립운동의 성지`자리매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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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9.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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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2명 추가 추서…안동출신 1023명
 
 안동출신 독립운동가 2명이 추가로 독립유공자로 추서돼 안동지역이 명실상부한 독립운동의 성지임을 입증케 하고 있다.
 시에 따르면 제64주년 광복절을 맞아 신간회 안동지회 등 1920년대 안동지역에서 활동한 남병세(南炳世· 이명 南東煥·대통령표창)와,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조사원 등 중국 상해·일본 동경 등지에서 활약한 이옥(李鈺·건국훈장 애국장)이 독립유공자 포상을 받았다는 것.
 이로써 안동 출신의 독립유공자는 323명으로 미 포상 독립운동가 700명을 포함하면 무려 1023명으로 전국에서 가장 많은 수치를 보이고 있다.
 이번에 포상을 받은 남병세(1898~1956·일직면 망호리)는 1925년2월20일 경북청년대회의 발기회에서 선전부 위원에 선임됐고 그 해 8월 화성회(火星會) 회원으로 예천시민 대(對) 형평사원 폭행사건에 대한 조사회 준비위원으로 출됐다.
 1926년 봄 김남수(金南洙·예안면 오천)의 권유로 고려공산청년회에 참여해 안동야체이카 책임자가 됐고 그 해 여름 조선공산당에 입당해 안동야체이카의 책임자로 활동했다.
 이후 1927년 8월 창립된 신간회안동지회에 참여하며 1928년1월18일에 열린 신간회 안동지회 제2회 정기대회에서는 전형위원 및 간사로 선출돼 활동하다 1930년7월 일본경찰에 검거돼 1930년12월 대구지법에서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징역 10월, 집행유예 4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옥(1895~1928·도산면 토계리)은 1919년11월 대한민국(大韓民國) 임시정부(臨時政府) 조사원으로 활동하다 1920년 철혈단원(鐵血團員)으로 동지규합을 위해 북경·봉천(奉天) 방면에서 활동했다.
 이후 그는 1921년 일본 동경(東京)에서 `조선유학생학우회(朝鮮留學生學友會)’ 서무부장을 역임하고 1922년 `동경조선노동동맹(東京朝鮮勞動同盟)’ 간부로 활동하며 1924년3월1일 재 동경(在 東京) 조선인 단체 학우회(學友會), 조선노동동맹회(朝鮮勞動同盟會) 등의 연합 주최 하에 열린 3·1기념식에 참여했다 일제 경찰에게 체포됐다.
 특히 이옥은 재동경 학우회 대표 및 신간회 조사부원·의안작성부원·대표회원 등으로 선임돼 활약한 것을 비롯 1924년 6월 사회사정연구회(社會事情硏究會)를 창설하는 등 적극적인 독립운동을 펼쳤다.
 시 관계자는 “안동은 1894년 갑오의병의 발상지이자 한국독립운동사의 출발점으로 독립운동을 가장 먼저, 제일 많이, 가장 오래 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며 “이번 독립운동가 추가 추서로 안동이 명실상부한 한국 독립운동의 성지임을 입증하게 됐다”고 말했다.
 안동/권재익기자 kji@hido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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