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의 상처와 마주하고 높이 뛰어오르다
  • 이경관기자
내면의 상처와 마주하고 높이 뛰어오르다
  • 이경관기자
  • 승인 2014.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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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나의 세 번째 소설… 불안한 청춘들의 삶·방황 독특한 시선으로 그려

 

그랑주떼
김혜나 지음 l 은행나무 l 130쪽 l 8000원

[경북도민일보 = 이경관기자] “그것은 마치 거대한 불길에 휩싸인 용광로 속의 물처럼 펄펄 끓어올랐다. 그럴 때면 곧 내 몸 전체가 다 불길에 휩싸인 듯했다. 그리고 나는 서서히 사라져 갔다. 발이 사라지고, 발목이 사라지고, (…) 모든 것이 사라지고 아무런 느낌도 생각도 떠오르지 않는 지금 이 순간만이 나에게 남았다. 물은 정말이지 차갑고 뜨거워, 나에게 떠오르는 수많은 감정과 생각들을 다 앗아가 버렸다.”(31쪽)
 이 시대 젊은이들의 감성과 사랑을 자신만의 시선으로 오롯이 담아 `김혜나표 청춘소설’이라는 장르를 만들어낸 작가 김혜나가 최근 세 번째 소설 `그랑주떼’를 펴냈다.
 이번 소설은 장편소설 `제리’와 `정크’에 이은 청춘소설의 완결편으로 불안한 청춘들의 삶과 방황 등을 독특한 시선으로 그렸다.
 “리나의 이야기를 듣고 있을 때면 내 몸은 마치 하나의 어항이 된 것만 같았다. 나는 나의 어항 속으로 리나의 이야기가 더욱 많이 들어올 수 있도록 내 몸이 더 커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몸의 근육들이 모두 늘어나고, 관절들이 모두 열리면 리나의 이야기가 더 많이 쏟아져 들어올 것 같았다. 그러면 리나는 영원히 내 곁에 남아 이야기를 늘어놓을 것만 같았다. 그런 상상을 하면 몸이 저절로 부풀어 올랐다.”(63쪽)
 이십대 초반의 예정은 쇠락한 동네 무용원의 시간 강사다. 그녀는 다이어트를 목적으로 무용원을 찾은 주부들을 대상으로 발레 기본 동작을 가르친다. 그녀는 열다섯, 늦은 나이에 발레를 시작했다.
 그녀는 중학교 2학년 때 미국에서 전학 온 리나와 단짝 친구가 됐다. 리나를 만나기 전, 그녀는 외톨이였다. 그런 그녀의 눈에 리나는 너무나 반짝였다. 그녀는 리나를 친구 이상으로 동경했다.
 그녀는 춤을 추지 못했다. 발이 크고 고가 있어 발레의 정확한 동작은 만들 수 있었으나 무슨 이유 때문인지 동작을 연결하면 발을 땅에서 뗄 수가 없었다. 누군가 날지 못하게 부여잡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그다음부터는 결코 아무렇지 않을 수 없는 일들이 계속해서 일어났다. 축축한 침에 흥건히 젖은 남자의 혓바닥이 내 입 속으로 쑥 들어오는 순간, 생애 처음으로 마주한 어마어마한 크기의 공포와 두려움과 메스꺼움이 내 안으로 한꺼번에 들이 닥쳤다.”(78쪽)
 그녀는 어릴 적 한 남자에게 성폭행을 당한 뒤 무서운 마음에 어른들에게 도와달라 소리치지만 그녀의 엄마는 그녀가 소리쳤다며 되레 그녀를 때린다. 그녀는 그 일을 겪은 후 친구들로부터 또 어른들로부터 더욱 철저히 외면 받는다.
 “죽음과도 같은 시간. 외부의 시간은 흐르고 있으나 나에게는 모든 것이 정지되어 흐르지 않는, 흐를 수 없는 시간. 내 몸과 의식의 모든 시간과 기능이 다 멈춰버리고 마는 시간.”(79쪽)
 그 일이 있고 얼마나 흘렀을까, 그녀는 평소 자신을 아껴주던 사촌오빠에게 또 다시 성폭행을 당한다. 연이은 상처는 어린 그녀를 더욱 옭죈다. 그런 그녀에게 단짝친구 리나는 삶의 유일한 통로이자 빛이었다.
 “나는…… 하늘을 날고 싶었어. 그런데 내 몸은 늘 땅에만 있었어. 아무리 노력해도 땅에서 절대 떨어지질 않았어. 아무리 높이 그랑 주떼(Grande Jete)를 뛰어도 나는 늘 땅으로만 되돌아와 있었어”(114쪽)
 그녀는 발레를 하는 리나의 모습 속에 상처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자신의 모습을 투영했다. 춤으로 자신의 감정을 이야기하고 또 그것을 통해 사람들과 교감하는 리나의 모습을 보며 그녀는 유년시절 자신을 떠올린다.
 춤에 대한 리나의 열정과 그런 리나를 동경했던 순수한 자신을 떠올리며 그녀는 자신의 상처와 마주할 용기를 얻는다. 그녀는 얼음 양동이에 두 발을 담그고 얼음이 다 녹을 때까지 견딘다. 그녀는 어른들의 말과 얼굴에 묻어야만 했던 자신의 상처를 똑바로 마주하고자 스스로 몸과 마음을 학대하며 담금질 한다.
 이제야 비로소 그랑주떼를 할 자신이 생긴 예정. 그녀는 어린 자신을 만나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까.
 `너의 잘못이 아니야. 괜찮아’라고 말하고 싶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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