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도민일보 = 정재모] 제(齊)나라와 진(晉)나라가 전쟁을 할 때다. 제나라 사람 여자(餘子)가 전투에서 극(戟)이라는 창을 잃고 대신 모(矛)라는 다른 창을 얻었다. 본전은 챙겼다는 생각으로 퇴각을 하다가 꺼림칙해서 어떤 사람에게 물었다. 그 사람은 “극도 창이고 모도 창인데 무엇을 걱정해 돌아갈 수 없겠는가”고 했다. 그래도 못미더워 다른 사람에게 또 물었다. “모는 극이 아니고 극은 모가 아닌데 극을 잃어놓고 모를 얻었다고 해서 책임이 어찌 없겠는가.”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여자는 이에 크게 갈등했다.
여씨춘추 이속(離俗)편에 나오는 ‘망극득모(亡戟得矛)’란 말의 고사다. 망극득모는 손해와 이익이 서로 겹쳐서 결국은 손해를 입은 일도 없으며 이익을 얻은 일도 없는 경우에 쓰이는 말이다. 제나라 여자가 잃은 것도 무기이고 얻은 것도 무기일진대 시쳇말로 제로섬 아닌가. 그런데도 이런 경우에 갈등을 하게 되는 것이 사람이고 인간사회다. 갑자기 이 성어가 생각난 것은 고사의 주인공이 겪는 갈등이 오늘의 우리네 처지와 닮은 데가 있어서다.
미국의 사드 배치를 받아들이느냐 마느냐, AIIB에 참여하느냐 않느냐. 한국이 둘 중의 하나를 반드시 선택해야만 하는 문제들이다. ‘전략적 모호성’ 유지도 무한정 지속될 순 없다. 미국은 우리의 동맹이다. 그들을 거부하면 혈맹에 금이 갈까 두렵다. 중국은 우리와 관계가 매우 가까워진 거대한 시장이다. 이 관계가 틀어지면 큰 시장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 때문에 지금 처해 있는 두 가지 사안에서 아무리 잘 선택해도 망극득모 상황 이상은 바랄 수가 없는 처지다. 어째서 한국의 운명은 예나 지금이나 어떤 선택을 해도 별 이익이 없이 되레 손해만 있을 이런 골치 아픈 샌드위치로 내몰리는 딱한 신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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