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과 마늘+α
  • 정재모
쑥과 마늘+α
  • 정재모
  • 승인 2015.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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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도민일보 = 정재모]  ‘…그때 곰 한 마리와 호랑이 한 마리가 있어 같은 굴에 살며 항상 환웅에게 빌되 사람이 되기를 원했다. 이에 환웅이 신령한 쑥 한 자루(炷)와, 마늘 스무 개를 주면서 “너희들이 이것을 먹고, 백일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곧 사람이 되리라” 하였다. 곰과 호랑이가 그것을 받아서 먹었다. 곰은 삼칠일을 참아 여자의 몸을 얻었고, 호랑이는 능히 백일을 참지 못해 굴을 뛰쳐나가버림으로써 인간의 몸을 얻지 못했다.’
 삼국유사 맨 첫머리에 나오는 고조선 조 일부다(이병도 역). 단군을 낳기 전의 웅녀가 사람으로 화하는 과정을 그린 이 문장의 키워드는 쑥과 마늘, 그리고 백일동안의 어둠이다. 달리 말하면 고통과 인내일 것이다. 쑥과 마늘을 상고시대의 질병 예방약으로 보기도 하지만 쓰고 매운 음식을 먹으면서 인내심을 기르라는 것이리라. 백일 동안 햇빛을 보지 말라 한 것 역시 무섭고 외롭고 어두운 시간과의 싸움을 적어도 백일은 견뎌내라는 주문이었을 거다. 옛사람들의 인간관을 잘 말해주는 서사다

 지금도 우리민족은 아기를 낳으면 집 앞에 금줄을 치고 삼칠일(21일)을 꺼린다. 세이레 동안 산모와 아기를 외부로부터 차단하여 보호하는 거다. 삼칠일은 핏덩이가 겨우 사람의 형체를 갖추게 된다고 보는 시간이다. 그리고 백일이 지나고서야 비로소 완전한 사람이 되었다는 뜻으로 피로(披露) 잔치를 열고 아기를 선뵌다. 단군신화에서 쑥과 마늘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둠의 굴속에서 백일을 인내하며 기다린다는 시간적 의미도 결코 작지 않다. 어둠을 못 견뎌 뛰쳐나간 호랑이 이야기를 비교한 문장이 이를 말하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지난달 29일 대표취임 50일 기념기자간담회를 갖고 “우리당도 앞으로 50일을 쑥과 마늘을 더 먹어야 제대로 변화된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다”고 했다. 재치 있는 비유다. 하지만 문 대표는 쑥과 마늘에 더해야 할 ‘어둠속 백일’이라는 알파를 잊고 있는지도 모른다. 취임 같은 무슨 날에 백일이니, 1년이니 하는 의미를 부여하는 경우는 종종 봤어도 ‘50일 기념’은 귀에 설다. 하긴 ‘취임 5일 기념’인들 못하란 법 있으랴만 좀 억지스러워 보이는 거다. 기자들이 요청한 간담회였을까. 인내심 약한 범처럼 바깥세상이 성마르게 그리웠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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