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러나면 ‘대통령 기념관’부터 짓는 전직들
  • 한동윤
물러나면 ‘대통령 기념관’부터 짓는 전직들
  • 한동윤
  • 승인 2015.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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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으면 내 집부터 허물라”는 리콴유

▲ 한동윤 주필
[경북도민일보 = 한동윤] ‘이명박 기념관’ 건립이 한때 이슈로 떠올랐던 적이 있다. 작년 9월 포항에 있는 한동대 대외협력실장인 원재천 교수가 “한동대 내 이명박 전 대통령 기념관 건립이 가시화되고 있다. 포항 출신 이 전 대통령을 기리는 기념관 건립은, 한동대가 지역사회와 국가에 기여할 수 있는 대형 프로젝트”라고 밝힌 데 따른 것이다.
 ‘이명박 기념관’ 건립은 그러나 총학생회 측에서 “기념관 건립은 학교의 정체성과 직결되는 부분이다.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끝나지 않은 시점에서 기념관 설립을 추진한다는 데 심각한 유감을 표한다”고 반발해 더 이상 진전은 없는 상태다. 이 전 대통령이 ‘기념관’ 건립 문제에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우리나라는 ‘전직’만 되면 ‘기념관’을 만드는 데 열성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처럼 ‘사후’(死後)에 기념관이 설립되는 것은 후손들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별개다. 그렇지만 생존해 있는 전직 대통령들까지 어김없이 ‘기념관’ 또는 기념관에 준하는 사저(私邸)를 신축해왔다. 서울 동교동의 김대중기념관이 그렇고 경남 통영의 김영삼기록전시관이 그렇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봉하마을 사저 역시 사실상 기념관으로 볼 수 있다. 앞으로 대통령을 지낸 ‘전직’(前職)마다 기념관을 지으면 전국 곳곳에 대통령 기념관이 넘쳐날지 모른다.
 지난  3월 23일 싱가포르의 큰 별이 졌다. 오늘의 싱가포르를 만들고 이끈 리콴유(李光耀) 전 총리가 타계한 것이다. 그는 1990년 11월까지 26년간 총리로 재직하면서 인구 300만의 작은 나라 싱가포르를 아시아 4용(龍)의 하나로 일으켜 세운 20세기 세계의 지도자다. 그의 영결식에는 박근혜 대통령 등 아시아 각국 지도자들이 참석했다.
 싱가포르의 ‘국부’(國父) 리콴유는 자신이 세상을 떠난 뒤 자신의 집이 ‘국가 성지’로 지정되는 일이 없도록 자신의 사후에 집을 허물라고 지시했다. 그는 발간된 458쪽 분량의 저서 ‘싱가포르가 계속 전진하기 위한 분명한 진실들’에서 “나의 사후 오차드로(路) 쇼핑벨트 인근에 위치한 영국 식민지 시대에 지어진 집(방갈로)을 부수라고 이미 내각에 얘기했다”고 밝혔다. 그는 타계하기 직전인 3월 22일 싱가포르 언론 인터뷰에서 “내 집이 남게 되면 주변 건물들을 높이 올릴 수 없게 된다”며 “집이 철거되면 도시계획이 바뀌어 건물들을 더 높게 지을 수 있고, 땅값 가치도 커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퇴임하자마자 ‘기념관’을 짓는우리나라 전직들과 너무나 비교된다.
 그는 “인도 초대 총리 네루나 영국의 극작가 셰익스피어의 집도 일정한 시간이 지나고 나면 결국 폐허가 되고 만 것을 보았다”며 “침실 5개가 있는 이 집은 기둥은 튼튼하지만 이미 벽에 금이 가 있어 집을 보존하고 유지하는 데 돈이 너무 많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또 “과거를 기억할 사진이 있는 만큼 이 집에서 살았고 자랐던 나의 아들, 딸도 집이 헐린다고 안타까워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리 전 총리 집은 유대인 상인이 100여 년 전에 지은 것으로 리 전 총리는 1940년대부터 이 집을 소유하고 있으며 가족들과 거주해왔다.
 리 전 총리가 “내가 죽거든 헐어버리라”는 그의 집은 이미 색이 바랜 기와, 벽에 너덜거리는 페인트 찌꺼기로 누가 헐지 않아도 곧 주저앉을 것 같은 모습이라고 조선일보가 전했다.
 리 전 총리에게도 내부에 골프장까지 갖춘 공관(이스타나)이 있긴 했다. 그러나 그는 이 공관을 사용하지 않았다. 대신 옥슬리 거리의 오래된 집에서 출퇴근했다. 리 전 총리는 “지배층의 영혼을 정화하라”는 플라톤의 말을 신봉했다. 1959년 총리 취임 사진을 보면 리콴유와 각료 전원이 정장 대신 흰 셔츠와 흰 바지를 입고 있다. 청렴과 정직을 보이겠다는 것이다.
 리 전 총리는 “질서를 넘어선 자유는 용납되지 않는다”며 강력한 법치로 나라를 이끌었다. 태형(笞刑)은 그의 철학적 상징이다. 담배꽁초 버리기, 침 뱉기는 싱가포르에서 금기였다. 특히 지도층 부정부패에 엄격했다. “부패는 망국의 지름길”이라는 지론으로 측근이라도 봐주는 법이 없었다. 대통령에서 물러나자마자 ‘기념관’에 집착하는 전직대통령보다 “내가 죽으면 내 집을 허물라”는 리콴유 같은 지도자를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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