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도민일보 = 한동윤] 박근혜 대통령은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을 끔찍하게 챙겼다. 김 전 실장이 청와대인사위원장으로 인사실패를 되풀이 했고, 그 때마다 정치권에서는 ‘김기춘 책임론’이 불거졌지만 굳세게 그를 지켰다. 그 하이라이트는 올 1월 12일 연두기자회견이다.
박 대통령은 기자들이 김기춘 실장의 거취를 묻자 “김기춘 비서실장은 드물게 보는 사심없는 분이고 가정에 어려운 일이 있지만 자신에게 연연할 이유도 없이 (내)옆에서 도와줬다”고 강한 신임을 표시했다. 이어 “청와대에 들어올 때도 다른 욕심이나 그런 게 있겠나. 내가 요청하니까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하겠다고 오셨으니 이미 여러 차례 사의도 표명했지만, 여러 당면 현안이 많아서 수습을 먼저 해야 하고 해서 이 일들이 끝나고 (거취를) 결정해야할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당장 경질할 생각이 추호도 없음을 분명히 했다. 외아들이 사경을 헤매는데도 흔들리지 않고 곁에서 돕는 김 실장에 대한 고마움이 짙게 배어 있다. 무한 신뢰다.
그 김기춘이 ‘성완종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처음엔 ‘10만 달러’로 등장했다.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가 2006년 10월 유럽을 방문할 때 박 대표를 수행한 김 전 실장에게 10만 달러를 전달했다는 성완종 메모다. 국회의원 시절이다. 그러다 청와대 비서실장 시절 성완종을 만난 사실이 드러났다. 천하에 만나기 어렵다던 김 실장이 성씨를 서울 유명 한정식집에서 만난 것이다.
김 전 실장은 애초 “비서실장이 된 다음엔 성씨를 만난 적이 없다”고 잡아뗐다. 그러나 ‘성완종 다이어리’에 김 실장 명단 사실이 확인되자 기존 해명을 뒤집었다. 그는 문화일보 전화통화에서 “착각했던 것 같다. (비서실장 때) 만난 적이 있다”고 말했다. 검사에 검창총장, 법무장관 출신의 김 전 실장이 한 순간에 무너지는 모습이다.
김 전 실장의 외모는 싸늘한 게 특징이다. 법을 앞세워 치죄(治罪)해온 검사 기질이 몸에 밴 것이다. 그만큼 비타협적인 성격도 드러난다. 온정(溫情)이 부족한만큼 청탁이나 외압에 완강하게 저항할 것같은 인상도 줬다. 박 대통령이 “드물게 보는 사심없는 분”이라고 칭송한 것도 가슴에 와닿기도 했다.
그러나 웬걸 김 전 실장은 ‘10만 달러’로 무너지기 시작해 성완종과의 두 차례 만남으로 신문지상에 오르내리던 수많은 ‘비리혐의자’로 전락하고 말았다. 청와대를 물러 나온 뒤 개인전화를 모조리 차단했던 그가 ‘10만 달러’를 계기로 여기 저기 언론과 인터뷰하며 해명에 진땀 빼는 모습도 너무나 익숙한 모습이다.
김 전 실장의 ‘추락’에 가장 놀랄 사람은 박근혜 대통령일 것이다. “드물게 보는 사심없는 분이고 가정에 어려운 일이 있지만 자신에게 연연할 이유도 없이 (내)옆에서 도와줬다”고 극찬한 결과가 ‘성완종 스캔들’ 주인공 등장이다. 정윤회 문건 유출이라는 결정적 실수, 안대희·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 인사 실패 등 무수한 실책에도 불구하고 곁에 붙들어 놓기 위해 여론과 싸운 박 대통령은 너무나 허망할 것이다.
박 대통령은 2년 전 미국 방문 중 성추행 물의를 일으킨 윤창중 대변인에 대해 “열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마음 속은 모른다”며 한숨을 쉬었다. 박 대통령의 한숨 소리가 더 깊고 길게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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