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을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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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을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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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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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옥 위덕대 교수
[경북도민일보] 매일 아침 거울을 본다. 어쩔 수 없이 거울을 본다. 하루 딱 한 번 거울을 본다. 매일 아침 일어나 세수한 뒤의 습관처럼 평생을 해온 의식인 듯 거울을 본다. 그 외에는 화장실과 현관과 안방의 거울을 지나치며 비치는 모습을 구태여 외면하기까지 하는 나를 발견한다.
 거울 앞에서도 마치 하지 않으면 안되는 의식 치르듯 서너 가지 화장품을 열고 얼굴에 찍어 바를 뿐이다. 젖은 머리카락을 말리는 일도 번거롭다. 대간 빗으로 정리하고 나면 거울 앞에서 재빠르게 비킨다. 원래 천성이 게을러서 화장하기를 즐기지 않은 탓도 있었다. 가꾸어 매만지는 것을 즐기는 나이를 한참 지났다고 생각한 때가 벌써 10 수년은 된 듯하다가 언제부터였던가 거울보기 그 자체를 꺼리게 되었다.
 거울보기가 두렵다. 아니 거울 속의 나를 보기가 두렵다. 내가 나를 이렇게까지 혐오해도 될 것인가 싶을 정도다. 나르시서스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를 사랑하고 사랑하는 만큼 꾸며주면 좋지 않을까마는, 그래서 거울보기도 즐겼으면 좋을 것이다마는 그렇게 하지 않은 나 자신을 발견하곤 흠칫 놀라기까지 한다.
 조선 후기의 문인 이옥(1760~1815)은 49살 나이에 문득 거울 속의 자신을 응시하고 “거울에게 묻는다(鏡問)”라는 글을 남긴다. 옛날의 젊은 모습과 지금의 늙은 모습을 상세히 구체적으로 대비하여 묘사하면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본다. 그리고 거울과의 대화를 통해 변하는 것은 정해진 이치라는 것을 깨닫고 현재의 늙음에 순응한다. 그는 현재의 자신을 가감없이 비춰주는 거울을 통해 자신의 늙은 모습을 대면하고, 도망치지 않고, 지금의 모습이 그의 삶의 이력서임을 인정하는 성숙한 늙은이였다.
 늙은이의 모습을 희화적으로 적나라하게 묘사한 성호 이익의 글도 떠오른다. 83세까지 산 18세기 학자 성호 이익(1681~1763)은 ‘노인의 열 가지 좌절’이라는 글에서 늙음의 비감을 익살스럽게 적었다. ‘대낮에는 꾸벅꾸벅 졸음이 오고 밤에는 잠이 오지 않는다. 곡할 때는 눈물이 안 나고 웃을 때는 눈물이 흐른다. 흰 얼굴은 검어지는데 검은 머리는 희어진다. 30년 전 일은 모두 기억해도 눈앞의 일은 잊어버린다. 눈을 가늘게 뜨고 멀리 보면 분별할 수 있는데 눈을 크게 뜨고 가까이 보면 도리어 희미하다.’
 이 글을 읽고 100% 공감돼 많은 분들에게 보여 드렸더니 너나없이 공감하고 웃었다. 자신의 늙음에 한없이 순응하고서야 도달할 수 있는 노인에 대한 직관이요 긍정이다. 자신을 사랑하되 객관적으로 성찰할 수 있기에 도달할 수 있는 경지다. 웃음으로 공감하고 동서고금 다르지 않은 나이듦에 다시 한 번 공감되었다.
 다시 나는 어떤가. 어느 날 문득 나는 늙어있었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나는 더 이상 예쁘지도 아름답지도 않은 채로 거기 있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누구에게나 공평하기에 부정하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지난 10년간 50세의 나이를 즐겼다. 그 나이에 할 수 있는 개인적이고 가족적인 삶에서도 행복감을 누렸고, 주어진 바의 사회적인 역할에도 충실할 수 있었던 나이였기에 만족감도 있었던 시기였다. 그러면서 잠시 나이듦에 대한 생각을 접어두었던 시기였기도 했다.
 오늘도 거울을 본다. 의식처럼 무심히, 습관처럼 거울 앞에 선다. 그리고 자세히 들여다 보고 나에게 물어본다. 지금 이대로를 아름답다 할 수 있을까. 거울 속에서 발견한 나를 사랑할 수 있을까. 지나온 내 젊음의 나날들을 하나도 빠트리지 않고 기억하고 있는 눈가의 주름을, 사랑하고 기뻐하였던 날들의 웃음과 미소를, 쓰고 힘들었던 온갖 아픈 소리를 참아내 준 귓불을 아껴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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