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추
  • 정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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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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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도민일보 = 정재모] ‘이제 가을은 머언 콩밭짬에 오다// 콩밭 넘어 하늘이 한 걸음 물러 푸르르고/ 푸른 콩닙에 어짜지 못할 노오란 바람이 일다// 쨍이 한 마리 바람에 흘러흘러 지붕 너머로 가고/ 땅에 그림자 모두 다소곤히 근심에 어리이다// 밤이면 슬기론 제비의 하마 치울 꿈자리 내 맘에 스미고/ 내 마음 이미 모든 것을 잃을 예비되었노니// 가을은 이제 머언 콩밭짬에 오다’ 저만치 콩밭 틈새로 가을이 오고 있다는 유치환(柳致環;1908~1967)의 ‘입추’가 새삼스러워지는 계절이다.
 개인적으론 24절기 중 오로지 입추와 처서만은 해마다 기다리며 챙긴다. 입춘에서 대한까지 보름마다 하나씩 바뀌고 바뀌는 절기를 기다려야 할 까닭이 달리 있을 수 있으랴. 하지만 달력에 가을 추(秋)자가 뜨는 입추와, 더위가 처분된다고 믿는 처서(處暑)만큼은 언제나 기다려온 거다. 더위를 못 견뎌하는 체질 탓이리라. 생각해보면 장마 끝나고 한더위 폭염이 시작된 게 불과 열흘 남짓하건만 ‘이놈의 더위, 더위’하면서 그동안 달력을 몇 번이나 들여다봤던가.

 이미 지난달 27일 올해 경북도내 첫 벼 수확 사진이 고령 발(發)로 지면을 장식했다. 엊그제는 누런 벼를 콤바인이 빨아들이는 부산 쪽 그림이 눈길을 끌었고 전국 곳곳마다에서 첫 벼 베기 소식이 다투어 들려오고 있다. 특별한 경우라서 신문 방송을 타는 거지만 이런 뉴스에 이어 서늘한 바람은 머잖아 곧 따라 오게 마련이다. 그럴싸 그런 건지 여름 내내 맹렬하게 울어대는 말매미 소리도 멀어져가는 기적소리처럼 한풀 꺾인 느낌이고 수숫대 끝의 검은 빛 열매송이는 바람에 살랑거리고 있다.
 내일(8일)이 가을로 접어든다는 절기 입추. 하지만 어제에 이어 오늘 내일이 올여름 폭염의 절정을 이룰 거란다. 이런 즈음이라 가을 들먹일 계제는 아닐 성도 싶지만 해거름 녘에 산책이라도 나서보시라. 하마 바알간 고추잠자리 떼가 머리 위에 어지러울 터, 이게 가을의 조짐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시인이 이르기를, 슬기로운 제비는 찬바람을 눈치 채고, 콩밭 사이로 가을이 오고 있다고 노래했으니 요 며칠 사이의 이 지독한 염제(炎帝)도 얼마 안 있어 도리 없이 물러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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