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려했던 대로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이 ‘9·15 노사정 대타협 파기’를 선언하면서 노사정위원회에도 불참하겠다고 밝혔다.
한국노총은 19일 기자회견에서 “9·15 노사정 합의가 정부·여당에 의해 처참하게 짓밟혀 휴지조각이 되었고, 완전 파기되어 무효가 됐음을 선언한다”고 주장했다.
한노총은 그 이유로 “정부ㆍ여당이 비정규직 양산법 등을 입법 발의해 합의 파기의 길로 들어섰고 노사와 충분히 협의하기로 한 ‘양대 지침’도 일방적으로 발표했다”는 점을 들었다. 그러면서 향후 ‘소송 투쟁’과 ‘총선 투쟁’을 벌여나가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그나마 노사정 위원회 ‘탈퇴’를 언급하지 않고 ‘불참’하겠다는 선언에 그친 것은 향후 ‘복귀’의 여지를 남긴 것으로 해석되지만, 현재 상황은 그것을 위안으로 삼을 만한 형편이 전혀 못된다.
노사정이 ‘역사적인’ 대타협을 이뤄냈다고 전 세계에 자랑스럽게 알린 지 불과 4개월여 만에 합의의 한 당사자가 이탈함으로써 한국경제의 신인도에 대한 타격은 불가피해졌다. 사태가 이 지경까지 오는 동안 노사정의 불신은 깊어졌다. 상호 의견이 대립할 때 타협하기보다는 ‘벼랑 끝까지 가 보자’며 상대방을 압박하는 바람직하지 않은 기풍이 고착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갖게 된다. 무엇보다 정년 60세 법제화에 따른 청년들의 ‘고용 절벽’ 해소와 시급한 노동개혁 등 발등의 불같은 현안들이 해결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지금부터가 더욱 문제다. 한국노총이 이미 노사정 대화의 틀을 뛰쳐나간 민주노총과 연대해 강경한 대정부 투쟁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한국노총이 노사정 합의의 한 축으로서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면 솔로몬의 재판에 나선 어머니의 마음을 가져 주기 바란다. 아이의 생모는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눈앞에서 자식이 칼로 동강 나는 것을 지켜보기보다는 우선 아이를 살리고자 했다. 지금 우리 경제의 상황은 솔로몬의 칼 앞에 놓인 어린아이와 다르다고 할 수 없다.
이처럼 사태가 악화한 데에는 정부의 책임도 작지 않다. ‘5대 개혁 입법’ 처리를 위해 야당과 노동계를 설득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도 모자랄 판에 굳이 ‘양대 지침’을 들고나와 국면을 더 어렵게 만들었어야 했는지는 납득하기 어렵다. 정부의 설명대로라면 새로운 입법을 하는 것도 아니고 기존의 판례와 법 해석을 정리한 것에 불과한데, 이런 지침이라면 시급한 현안부터 처리하고 논의해도 늦지 않았을 것이다.
또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3일 대국민담화와 기자회견에서 쟁점이 되는 노동개혁 법안 가운데 ‘기간제근로자 보호법’을 사실상 유보하겠다는 ‘양보안’을 내놓기는 했지만, 그 이후 정부와 여당이 노동계와 야당을 설득하려는 진정성 있는 움직임을 보여주지 않은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상황이 더 악화하기 전에 노사정은 다시 대화에 나서야 한다.
그리고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가려서 이견이 없는 부분부터 시행하고 끝내 합의를 이루지 못하는 쟁점에 관해서는 밤을 새워서라도 치열하게 토의해야 할 것이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것 이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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