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도민일보 = 김용언] “산길에서 주워든 도토리 두 알/ 한 알은 작고 보잘 것 없는 도토리 / 한 알은 크고 윤나는 도토리// 나는 손바닥의 도토리 두 알을 바라본다// 너희도 필사적으로 경쟁했는가/ 내가 더 빛나는 존재라고 / 땅바닥에 떨어질 때까지 싸웠는가/ 진정 무엇이 더 중요한가// 크고 윤나는 도토리가 되는 것은 / 청설모나 멧돼지에게나 중요한 일*/ 삶에서 훨씬 더 중요한 건 참나무가 되는 것/ 나는 작고 보잘 것 없는 도토리를 멀리 빈숲으로 힘껏 던져주었다/ 울지마라, 너는 커서 참나무가 되리니 (*Henry David Thoreau에게서 따옴.) <박노해 - 도토리 두 알>
혹시나 하고 대구일보 연재물을 뒤지다가 제목 속의 ‘도토리’에 눈길이 꽂혔다. 뭔가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육감에 시를 훑었다. 드디어 ‘멧돼지’가 나왔다. 박노해 시인이 공들여 썼을 작품이지만 음미할 여유가 없다. 마감시간에 쫓기는 처지에 ‘멧돼지’란 낱말 하나를 찾아낸 사실이 더 기뻤다.
“겁 많다”는 멧돼지가 사람사는 동네에까지 왜 내려올까. 이유야 많겠지만 배가 고픈 탓일 게다. 자칫 엽사의 총에 맞을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사람들은 도토리를 싹 쓸어 가버린다. 그러니 먹을 게 풍족할 리가 있나. 도토리는 “청설모나 멧돼지에게나 중요한 일”이란 시인의 말에 귀를 기울여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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