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나를 끼워 줘, 나도 함께하고 싶어”
  • 경북도민일보
“제발 나를 끼워 줘, 나도 함께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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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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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혁이반 아이들
▲ 서가숙 작가

 9. 오늘 내 기분은 흐리고 어두워 짐

지원 이를 처음 보는 사람은 지원이의 잘 생긴 얼굴을 보고
“멋진 왕자님 같아.”
라고 말해주고 싶을 정도로 사랑스럽고 귀여운 아이입니다.

지원 이는 아침에 눈을 뜨면 TV를 켜고 일기예보를 꼭 봅니다.
“오늘 날씨 맑음.”
큰 소리로 말하고는
“내 기분은 흐리고 어두워 짐.”
하며 투덜거립니다.

지원이가 즐겨 부르는 노래는 “내 동생”입니다.
내 동생 곱슬머리 개구쟁이 내 동생
이름은 하나인데 별명은 서너 개
아빠가 부를 때는 꽁꽁이
엄마가 부를 때는 멋쟁이
누나가 부를 때는 왕자님
여기에다 하나 더 추가해서
친구들이 부를 때는 미운 오리.

반복해서 계속 부르는 짜증나는 노래를
식구들은 말도 못하고 듣기만 합니다.
지원이가 마음대로 노래 부르다가
언제 또 화내고 짜증낼지 몰라서 그냥 못 들은 척 합니다.

식구들과 밥 먹을 때 지원 이는 편식을 합니다.
생선 먹을 때는 엄마가 가시를 다 발라주고
고기 먹을 때는 알맞은 크기로 잘라주고
과일 먹을 때는 지원이가 원하는 것을 줍니다.
성격이 예민해서 식구들은 원하는 대로 해주는 것입니다.

지원 이는 다리가 아파서 늘 절뚝거립니다.
자주 넘어지고 혼자 일어나기 힘들고
계단 오르기가 힘들며 달리기도 힘듭니다.
등교 시에는 엄마가, 하교 시에는 아빠가
가방과 신주머니를 들고 같이 다닙니다.

지원 이에게 하루는 힘든 일과이지만
친구들은 지원이가 다리를 절뚝거리는 것만 빼면
멀쩡하기 때문에 아프다는 사실을 모릅니다.
어쩌다 친구들이 살짝 부딪치기라도 하면
지원 이는 화를 내고 욕하며 소리 내어 웁니다.

“살짝 부딪쳤는데 엄살도 심하다.”
“뭐가 아파? 스쳤을 뿐인데.”
“툭 하면 화내고 운다. 네가 울보냐?”
“좀 뛰어 봐라. 오리같이 뒤뚱거리지 말고.”
“말만 하면 아프대. 아프면 병원가야지.”
친구들은 점점 지원이가 미워집니다.

체육시간이 되면 친구들은 지원 이를 피합니다.
같은 편이 될까봐 줄을 서면서 긴장합니다.
지원 이와 같은 편을 하게 되면 무조건 지게 되니까요.
즐거운 체육 시간을 지원이 때문에 망치고 싶지 않아 합니다.
바로 발 앞에 놓인 공도 제대로 못 차고 헛발을 날리니까요.

달리기도 못 하고
줄넘기도 못 하고
축구도 못 하고
공도 못 던지고
할 줄 아는 운동이 하나도 없습니다.

“제발, 우리 편이 안 되었으면 좋겠어.”
친구들의 바람입니다.
“제발, 나를 끼워 줘. 나도 하고 싶어.”
지원이의 바람입니다.
서로 엇갈린 바람은 짜증이 되어 선생님만 애가 탑니다.

점심시간입니다.
누가 밀지도 않았는데, 발에 걸린 것도 없는데,
급식 판들고 가던 지원이가 앞으로 넘어졌습니다.
“싫어, 정말 밥 먹기 싫어.”
지원 이는 쏟아진 급식을 보며 울음을 터트렸습니다.

“자기가 쏟아놓고 울고 있어.”
친구들이 한 마디씩 합니다.

선생님이 다가와 깨끗이 청소합니다.
“급식을 다시 갖다 줄까?”
“됐어요. 안 먹을래요.”

친구들이 밥 먹는 동안 지원 이는 책상을 두들깁니다.
“지원아, 조용히 하자.”
선생님은 지원 이를 이해합니다.
그러나 친구들은 지원 이를 이해 못 합니다.
이해하고 싶지도 않고 이해하기도 싫습니다.

오후에는 만들기 수업이 있습니다.
선생님 말씀을 잘 듣고 잘 따라 해야 합니다.
지원 이는 느린 편이라 기구나 물건을 다룰 때
조심 하는데도 손의 힘이 없어서 깨트리거나 엎지르게 됩니다.
지원이가 속한 그룹의 아이들은 짜증이 납니다.

머리와 몸이 일치하지 않아서
마음과 몸이 따로 여서
입과 몸이 다르게 행동해서
팔과 몸이 엇 갈려서
무엇이든 빗나갑니다.
계단을 오르내릴 때나 물건을 옮길 때,
보통 아이에게 전혀 힘들지 않은 일도
지원에게는 힘이 들고 피곤합니다.
그러나 친구들은 그것을 모릅니다.
그래서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는 교실입니다.

누군가가 중간에서 역할을 맡아 중재해야 하는데
선생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지원이 부모님도 입만 꾹 다물고 있습니다.
반 친구들은 불만이 가득 차 있습니다.
모두들 마음속으로만 말하여 들리지 않습니다.
지원 이는 오늘 아침에도 일기예보를 봅니다.
“오늘 날씨 맑음.
내 기분은 흐리고 맑음.”
“지원이가 오늘 아침에는 기분이 좋은가봐.”
“기분이 좋아지게끔 노력하려고.”

선생님은 더 이상 숨겨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지원이의 병명을 얘기해주고
아이들의 도움을 받아야 된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지원이가 상처 받겠지만 무조건 숨겨서는 안 된다고
지원이의 부모님도 마음속으로는 늘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수업 시간에 갑자기 비디오를 보여줍니다.
지원 이와 비슷한 병을 가진 아이가 주인공입니다.
길을 가다가 넘어지고, 쉽게 다치고,
혼자서는 일어나기 힘들어 하고,
짜증을 잘 내는 주인공이 지원 이와 많이 닮았습니다.
아이들은 계단을 올라가지도 못하고,
공을 차지도 못하는 주인공이 불쌍했습니다.

비디오를 다 본 친구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안됐다. 불쌍해.”
“여러분, 이 친구가 만약 우리 반에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도와줘야 합니다.”
“그래요.
선생님이 이 비디오를 보여준 이유가 무엇인지 다 알겠지요?
근육병은 무섭고 안타까운 병입니다.”
아이들은 그제 서야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날 이후,
반 친구들은 지원 이에게 기다려 줍니다.
“먼저 해. 내가 기다려줄게.”
“천천히 해. 늦어도 괜찮아.”
“못해도 괜찮아. 참가하는데 의의가 있는 거야.”

“내가 도와줄까?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해.”
친구들의 말투가 부드러워지고 양보도 해 주자,
지원이의 짜증은 조금씩 줄어들었습니다.

지원 이는 아침마다 보던 일기예보를
더 이상 보지 않습니다.
“오늘 날씨 맑음.
비가와도 맑음.
흐리고 천둥쳐도 맑음.
내 기분은 언제나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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