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도민일보] 김살로메칼럼
인간은 자기변명의 달인이다. 자연히 기억을 조작하고 그 기억을 왜곡하기도 한다. 의도하고 치졸한 행동을 하는 게 아니라 그냥 그렇게 되는 거다.
스스로에게는 자기 연민에 빠져 관대해지고, 타자에게는 객관의 눈이란 명목으로 냉정해지는 게 인간이 속성이다. 자책을 모면하기 위한 방편으로써 왜곡된 기억이 자신 안에서 요지부동의 진실로 기능하기까지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 과정에서 오해가 싹트고 갈등이 깊어진다.
이러한 인간의 다면성을 파헤친 소설이 줄리언 반스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이다. 자신만의 눈을 버리지 못하는 우리는 아무도 옳지 않지만 그렇다고 아무도 그르지 않다.‘양쪽 말은 다 들어봐야 한다’는 말은 사실이지만 그 양쪽마저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소설. 제각각의 개성만큼 ‘찌질함’을 안고 사는 우리이기에 그 만큼 인간관계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원제 the sense of an ending은 소설 내용상 ‘뒤늦게 알아채기, 막판의 자각, 결말의 느낌’쯤이 되겠다.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기억을 왜곡하지만 결국 진실을 알게 된다는 허망한 느낌을 이렇게 표현한 걸까. 직역하지 않고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라고 출판사가 자의적으로 제목을 입힌 것도 신선하게 다가온다. 밋밋하고 성실한 제목보다 때론 독자를 유인하는 감각적이고 트렌디한 제목이 훨씬 낫기 때문이다.
제목의 ‘예감’이란 말을 토니에게 적용시켜 본다. 토니 입장에는 친구 에이드리언이 자신의 애인이었던 베로니카와 사귈 줄 예감하지 못했고, 에이드리언이 자살까지 할 줄은 꿈에조차 예감하지 못했다. 또한 자신이 생각한 이미지보다 베로니카가 훨씬 나은 여자임을 예감하지 못했고, 자신을 비롯한 주변인들이 베로니카 엄마인 사라와 연루되어 어떤 불행을 가져올지 예감하지 못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토니의 험악한 저주가 현실이 되었으니 나쁜 예감은 틀리지 않는 것이 되어버린 건가. “좀처럼 이해를 못하네. 아직도 전혀 감을 못 잡는구나.”라고 말하는 베로니카 입장에서도 토니에 대한 자신의 예감이 틀리지 않으니 말이 되는 제목 같기도 하다.소설 기법 면에서는 토니가 내레이터로 등장하는 점이 맘에 들었다. 대개의 소설은 도덕적으로 완벽하며 환경적으로 객관적인 내레이터를 등장시켜 세태를 분석하고 상황을 보여주려 한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는 지루하고 뻔한 틀을 깨고, 찌질한 솔직함을 장착한 토니를 화자로 내세웠다. 기억의 왜곡이 낳는 파장을 토니만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캐릭터도 없기 때문이다. 관찰자 시점으로 토니를 그린 게 아니라 토니 자신이 담담히 자신의 과오를 들추어내는 방식에 후한 점수를 주게 된다.
내 기억의 진실 찾기는 몇 퍼센트일까. 질척대고 소심하며 착하고 솔직한 토니를 앞세워 작가는 소설 형식을 빌려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깊어가는 가을, 여전히 독서의 계절이 유효하다면 기억의 왜곡과 편향된 역사에 대한 오롯한 반성이며 성급한 판단에 대한 서늘한 경고로 가득 찬 이 책의 일독을 권한다.
저작권자 © 경북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경북도민일보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디지털 뉴스콘텐츠 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
▶ 디지털 뉴스콘텐츠 이용규칙 보기
▶ 디지털 뉴스콘텐츠 이용규칙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