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찾는 40대들에게 악수를 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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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찾는 40대들에게 악수를 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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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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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인생’ 이준익 감독
 
황산벌’ `왕의 남자’ `라디오 스타’ 등 잇달아화제작을 낸 이준익(48) 감독의 영화 만들기는 별다르다. 슬렁슬렁, 어찌보면 짜임새는 부족한 듯 보이지만 새로운 소재로 새로운 가치관을 펼쳐놓는다. 거기에 삶을 대하는 진정성 있는 태도가 절대적인 첨가물로서 보는 맛을 낸다.
 최근의 영화계에서도 그는 환영받는 존재다. 고비용 구조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닫던 제작비가 당연시됐던 때도 이 감독은 늘 예산 이하의 제작비를 들여 영화를 만들었다. 감독 자신의 예술성을 고집하기 위해 하릴없이 늘어지는 촬영 회차도 제작자 출신의 이 감독에게는 당치 않은 말이다. 또한 감독으로 하고 싶은 말이 쌓여서일까. 최소한 2년은 돼야 한 편씩 내놓는 여느 스타감독과 달리 1년에 한 편씩,그것도 성수기에 꼬박꼬박 내놓는다. 물론 거기에는 모든 작업을 같이 한 콤비 최석환 작가의 공이 크다.
 올 추석엔 `즐거운 인생’을 들고 나왔다. 지난해 추석 시즌 개봉한 `라디오 스타’에 이어 자신들의 꿈이었던 록밴드 재결성에 나선 40대 아저씨들의 이야기. 이미제작에 착수, 10월 촬영을 시작할 `님은 먼 곳에’와 더불어 이 감독이 꼽은 `음악 3부작’ 중 가운데 편이다.
 `즐거운 인생’은 꿈을 잊고 살았던 40대 평범한 세 남자가 죽은 친구의 아들과 대학시절 록밴드 `활화산’을 재결성해 꿈을 펼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꿈을 이뤄가지만 결코 현실을 장밋빛으로 채색하지 않았다는 게 큰 강점. 현실이 달라지지 않더라도 꿈을 이루고 사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인생의 행복 체감지수는 다르다는 것을 말한다.
 감독으로서의 꿈을 펼쳐나가고 있는 이준익 감독과 함께 `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다음은 이준익 감독과의 일문일답.
 --`즐거운 인생’은 `라디오 스타’ 차기작으로 준비했던 40대의 진한 멜로가 무기 연기되며 갑자기 시작된 작품이다. 준비 기간이 짧았을 텐데.
 ▲최석환 작가와 3일 동안 방바닥을 뒹굴면서 생각해낸 기획이다. 시간을 짧았지만 치열하게 고민했고 `이 시대 필요한 영화가 무엇인가’라는 기본적인 고민이 있었기에 (생각이) 터져나왔다. “지금 40대 남자들에게 꿈이 무엇이냐”라고 물었다. 어렸을 때 꿈이 있었으나 현실에 부딪혀 못 이룬 것들, 그런 로망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다.
 은근히 밑에서 마그마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사람들이 많이 식었지만 남아 있는 불씨를 탁 터뜨리는 것을 담자고 했다. 마냥 40대의 이야기로만 하면 젊은 관객과의 유대감이 부족할 수 있기에 현준(장근석 분)을 넣었다. 40대 아저씨들을 젊은이의 새로운 문화가 싹트는 공간인 홍익대 앞으로 끌어들인 것도 세대간의 소통을 위해서다.
 --감독 자신의 취향이 많이 반영된 `라디오 스타’보다 대중적으로 만들고자 했다지만 40대 이야기라는 것 자체가 덜 대중적이지 않나. 40대 이상은 극장에도 잘 오지 않는다.
 ▲흥행 면에서 핸디캡이 있다는 걸 분명히 알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들었다.
영화는 젊은이들만의 오락 소비물이 아니다. 언제까지 영화가 젊은 관객만을 타깃으로 할 건가. 영화라는 고혈을 짜낸 공간 속에 40대 이상이 들어옴으로써 자신의 삶을 반추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대한민국 40대, 50대에게도 그런 권리가 있다. 이 영화를 통해 고단한 40대, 50대에게 악수를 청한다. 내가 40대이니 동세대가 공감하고 즐길 수 있다면 이보다 즐거운 인생이 어디 있나. 거기에 그 자식들까지 같이 즐길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영화 속 정진영 씨가 딸에게 “아빠가 뭐 좀 해”라며 씩 하고 웃는다. 아빠에게 즐거운 비밀이 생긴 것이다. 아내에게, 자식에게 부끄럽고 구차한 비밀이 아닌 행복하고 즐거운 비밀이 생겼으면 한다.
 --이번 영화의 화두는 `꿈’이다. 굉장히 직접적으로 꿈을 이루며 살라고 말한다.
 ▲현대인은 자신의 꿈을 접어두고, 심지어 내가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도 모른 채 살아간다. 그게 제일 불행한 일이란 것도 모른 채. 모든 인간은 행복 추구의 권리가 있는데 그것을 스스로 거세하는 삶을 강요받는 사회다. `옛날에 좋았어’가 아니라 `옛날도 좋았지만 지금이 더 좋아’라고 말하며 살 수 있었으면 한다. 언제까지`아이 러브 스쿨’같이 초등학교 시절을 되돌아보며 그때가 좋았다고 말하며 살아야 하나.
 --그러나 현실은 팍팍하다. 영화 속 주인공도 마찬가지다. 꿈을 이룬다고 해서 특별히 세속적인 삶이 달라지지도 않게 묘사했다.
 ▲꿈을 찾는다고, 영화 속 주인공들이 밴드를 한다고 갑자기 현실이 달라지는 건 공갈이고 사기다. 영화의 진정성은 사실성을 바탕으로 해야만 이뤄진다. 밴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삶을 이야기한 것이다. 영화는 오락을 지향하지만 영화라는 성분 자체는 생활의 진정성을 갖고 있어야 한다.
 --지금까지의 영화를 통해 주로 민초들의 삶, 잊혀진 사람들을 다루어왔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실업자, 이혼당하는 기러기 아빠, 자식 교육에 허리가 휜 아빠 등 어찌 보면 루저(loser)들을 내세웠는데.
 ▲난 평범한 사람들을 루저라고 말하는 데 대해 화가 난다. 그건 우리 국민 5천만 명 중 상위 1%, 많게 봐서 10%를 차지한 사람들이 나머지 4천500만 명을 세뇌시키는 것이며, 기득권이 그들을 폄훼하기 위한 악성 발언이다. 왜 그들이 루저인가. 세상은 메이저, 엘리트가 이끌어온 게 아니다. 혁명은 사회적 니즈(needs)가 아닌 대중의 사회적 원츠(wants)로 일어났다.
 왜 영화가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만을 다뤄야 하나. 대중영화란 동시대에 함께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기에도 모자란다.
 --음악을 주요 소재로 했다. 음악을 내세운 이유는.
 ▲흔히 세속적으로 성공했다는 40대 남자가 최고로 꼽는 취미가 골프인 것 같다.
골프 한번 치러 가는 데 보통 20만~30만 원 정도가 든다고 들었는데 그 돈이면 악기하나를 살 수 있다. 골프하는 인구의 절반이 밴드를 하면 세대간의 화합이 확장될 것이다. 악기를 연주하면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싶다. 이게 바로 소통의 시작이다. 집단과 집단의 소통이 원활한 사회가 곪지 않는다. 아버지 세대와 젊은 관객이 1980년대 `불놀이야’를 합창하면서 소통이 된다.
 --이 감독의 영화에는 악인이 별로 없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내가 위선적이라 그렇다(웃음). 세상에 악한 인물은 없다고 본다. 다만 세상이 악하고, 세상이 누군가를 악하게 할 뿐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적은 세상이고 인간이 만들어놓은 시스템이지 인간이 아니다.
 --정진영, 김윤석, 김상호 등 배우들의 연주 기량이 놀랍다. 특별한 훈련 방식이 있었나.
 ▲정진영 씨만 통기타를 쳐봤을 뿐 김윤석 씨는 기타를 잡아본 적도 없고, 드럼의 김상호 씨도 마찬가지였다. 우선 이병훈, 방준석 씨라는 걸출한 음악감독 두 명을 배치했다. 그리고 악기별로 한 명씩 개인지도 선생을 붙여서 단시간 내 영화적 목표를 달성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건 감독이 강요해서 되는 게 아니다. 배우 자신의 집념이 있기에 가능하다. 만약 배우가 대충 손동작이나 익히고 대역을 써서 하겠다고 생각했다면 아무리 감독이 말해도 되지 않는다. 베이스 치는 김윤석 씨를 봐라. 풀샷이 가능하게 됐잖냐. 김상호 씨의 그 신나는 표정은 어떻고. 배우의 진정성은 배역에 대한 집념으로 보여진다는 걸 새삼 느꼈다. 그들에게는 그 자체가 희열이었을 것이다.
 --`라디오 스타’의 최곤도 록 가수였고, 이번에도 록 밴드다. 록을 선택한 특별한 이유는.
 ▲록은 그 자체가 젊은이들의 자유와 반항을 담고 있다. 펄펄 살아 있으며 젊음이 분출된다. 인간이 나이를 먹었다 해서 육체적으로 쇠퇴할지 몰라도 정신이 쇠퇴하는 건 아니다. 최곤이 마지막 한가닥 선을 놓지 않았던 것은 자존심이다. 죽은 친구가 남긴 곡으로 죽은 친구의 아들과 합주함으로써 세대간의 유대감이 이뤄진다.
 기성세대가 젊은이에게 가까이 가야 한다. `네가 내게 오라’고 하는 게 아니라 `내가 너에게 가겠다’고 해야 한다. 록이 갖고 있는 꺼지지 않는 불씨가 바로 `즐거운 인생’이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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