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더듬어 가다보면 폐철길 곳곳 흔적들이 말 걸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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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더듬어 가다보면 폐철길 곳곳 흔적들이 말 걸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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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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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의 아름다운 마을길 <2>센트럴 그린웨이(Central Greenway)
▲ 포항 도심을 가로지르며 조성된 센트럴 그린웨이 전경.

 

[경북도민일보] 기차는 우리를 묘한 감정에 빠져들게 한다. 기차는 여전히 우리의 일상을 달리고 있지만 마치 과거에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과거 경험했던 정서적 요소와 혼재되어 어릴 적 추억에 머물러있게 한다. 우리 추억 속 기차의 풍경은 흑백필름처럼 아련하다. 증기기관차가 꽥 소리를 내며 들판을 가로질러 들어오면 이삭 줍던 아이들은 일제히 고개를 들어 허연 연기가 소실점이 될 때까지 시선을 놓지 않았다. 완행열차는 덜컹거리고 느릿느릿 움직여도 오감으로 느끼는 즐거움이었다. 차창으로 들어오는 작은 것 하나 놓치지 않을 만큼 조망의 여유로움이 소소한 즐거움을 느끼게 했다. 서로 다른 사투리가 뒤섞여 목청이 높아져도, 여기에 함께 탄 가축의 소리까지 합세해 객차 안이 시장 통이 되어도 누구도 불평하지 않았던 것이 객차에서의 불문율로 통했다. 음질이 엉망인 스피커에서 “잠시 후 이 열차는 종착역인 포항역에 도착합니다”라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올 때면 왠지 모르게 가슴 두근거리게 했던 설렘이 있었다.
시대가 바뀌어 기차가 속도를 대변하고 있어도 그 인상은 칙칙폭폭 달려가는 증기기관차나 완행열차가 아닌가 생각한다. 완행열차가 한반도의 끝을 향해 달려왔던 곳이 포항역이다. 종착역에 도착한 완행열차는 긴 여정의 마무리를 멀미하듯 사람과 짐을 쏟아내었고 달려온 길이 힘겨웠는지 허연 수증기를 옆구리로 흘러내며 열을 식혔다.
포항역은 2015년부터 고속철도가 흥해 신 포항역으로 들러오면서 그 기능도 함께 옮겨졌고, 97년간 유지했던 완행열차 종착역의 역사를 마감했다. 짧은 시간이 지났음에도 포항역은 사람들의 일상과 연결되지 못한 채 이제는 굳이 기억해내야 하는 공간이 되었다. 
기차가 다니지 않는 철길은 어떤 의미가 될 수 있을까?
길은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통로다. 또 사람과 사람을 만나게 하고, 문명과 문화가 만나 새로움이 시작되는 장소이다. 사람이 다니지 않는 길은 그 역할과 함께 이야기도 사라진다. 하지만 2015년 3월 31일 우리 이야기가 멈춰버린 폐 철길이 다시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고 있다. 그 곳에는 과거에 두고 온 관계의 흔적을 찾을 수도 있고, 차마 끝맺지 못한 이야기를 이어갈 수도 있다.

▲ 센트럴 그린웨이에서 만난 소풍 나온 가족들.

△ 공간의 한계를 독특한 구성과 연출로 극복한 도심공원
포항의 폐 철길이 기억의 공간이 되어 도심공원으로 새롭게 탄생했다. 바로 센트럴 그린웨이(Central Greenway)라 이름 붙여진 이곳은 남구 연일읍 효자역에서부터 북구 용흥동 구 포항역까지 4.3㎞를 폐 철길을 따라 도시 숲길이 조성되었다.
센트럴 그린웨이가 여타의 도심공원이나 도시 둘레길과 확연히 구분되어지는 것은 폐 선로는 그대로 보존하면서 주변 환경에 인위적으로 개입하지 않는 방식으로 공원과 둘레길이 디자인되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디자인이 인위적 폐기를 이끌며 소비를 촉진시켜왔다는 점에서 디자인윤리가 그 어느 때보다 강조되고 있다. 현대 도시들이 도심재생사업에서 주목하고 있는 부분도 공공디자인의 지속가능성이다. 그러한 면에서 센트럴 그린웨이는 디자인 윤리가 적용된 공공디자인이라 할 수 있다. 공간 활용에 있어서 공유지 경계를 넘어서지 않는 범위에서 공원이 조성되었고, 내부로 들어가 보지 않고서는 새롭게 만들어진 공간임을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개발의 흔적을 찾기 힘들다. 또 넓지 않는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방향에서 바라보아도 전체구조를 한눈에 예측할 수 없도록 면적의 한계를 구성과 연출로 대신해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시킨 공간이다.
원형미의 가치를 높이고자 형태에 따라 공원의 기능성이 부여되었다는 점과 목적에 근거한 디자인, 즉 사용목적이 적극적으로 반영된 기능성이 돋보이는 공원이라는 점에서 모더니즘 건축가 루이스 설리번의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기능주의 디자인 이론이 곳곳에 녹아나 있다.
센트럴 그린웨이는 공간구분에 있어 크게 두 가지 특징을 드러내고 있다. ‘어울누리숲’이 효자역에서부터 성모병원 입구까지는 조림(造林)위주 공간으로 조성되어 폐 철길이 가지는 의미와 효자역과 포항역으로 갈라지는 철길의 장소성에 중점을 두어 디자인 되었다면, ‘기억의 숲’은 성모병원 입구 이후부터 삼구 트리니엔 아파트까지 조형예술품과 인공시설물로 공간을 구성하여 증기기관차, 불의 정원, 조형암벽천 등 기차에 대한 기억의 공간으로 설정하고 있다.

▲ 기억의 숲 증기기관차.

△ 갈림길에서 시작되는 새로운 이야기들
효자역 울타리를 경계로 효자교회 앞에서 시작되는 센트럴 그린웨이에 들어서면 언뜻 보기에는 철길이 끊어져 있어 선로의 갈림을 찾기 힘들지만, 그 방향이 울타리를 넘어 효자역으로 향해 있어 이곳이 포항역으로 가는 철길임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포항역을 향해 누렇게 두 줄로 뻗은 선로는 금방이라도 기적소리 울리며 기차가 다가올 것만 같다. 선로와 오솔길이 교차하는 지점마다 시멘트로 포장 했지만 두 가닥 선로의 흔적만은 뚜렷이 남겨 놓았다. 여기서 철길 옆 오솔길을 따라 조금만 걸어가면 지곡 주택단지로 올라가는 고가도로가 나오고 그 아래에는 오밀조밀하게 꾸며 놓은 공원이 모습을 드러낸다.

폐 철길이 공원으로 조성되면서 도시아이들의 놀이터도 이곳으로 바뀌었다. 공원의 좁고 굴곡진 조형물을 따라 자전거 탄 아이들이 고개를 펼치며 연달아 지나간다. 기차가 다니던 시절 고가교 아래에는 사람이 접근할 수 없는 섭하고 음침한 장소였다. 스테인리스로 치장한 고가교는 기차에게만 들어내었던 음침했던 외형은 벗어 던지고, 거대한 거울이 되어 주변 경치를 흡수해 고흐의 그림처럼 일렁거리고 있다. 멀리서 두 아이가 반갑게 손을 들어 맞이한다. 김정연의 ‘어린왕자가 있는 풍경’이라는 조각 작품이다. 형태는 사람을 반갑게 맞이하는 듯한데, 표정은 어떠한 감정도 드러내지 않는 도시아이 같기도 하다.
다리를 지나면 대잠길 8번지다. 폐 철길과 교차하는 이곳에는 지금도 자동차와 마을 사람들이 다니는 길이다. 이곳에 기차는 다니지 않지만 철도 건널목 시설을 그대로 남겨져놓아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여기서부터 50m는 ‘어울누리숲’이다. 수림이 좋아 공간이 넓지 않음에도 주변의 도로나 아파트단지와는 차단된 도심공원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 곳이다. 숲속 정자에 올라 삼매경에 빠져도 괜찮은 곳이다.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도 들려오고 마치 산골 정자에 온 느낌이다. 오솔길을 걷다가 문득문득 나타나는 스틸조각작품들과의 조우는 또 다른 즐거움이다.

▲ 음악분수 광장.

△ 지극히 인공적인 공간에서 발현되는 자연스러움
‘기억의 숲’은 철길과 둘레길이 갈라지면서 조림위주의 ‘어울누리숲’에 비해 인공성이 물신 느껴지는 색다른 공간으로 연출되어 시선을 끄는 곳이다. 돌 하나 없이 흙으로만 쌓아 잔디를 심은 크고 작은 동산 사이로 아이들이 술래잡기에 한창이다. 확 트인 주변 경치와 적당히 경계 지음으로서 불필요한 시각적 요소를 차단하는 수단으로 동산을 조성한 것으로 보인다. 잔디가 심어진 동산 꼭대기에는 한그루 나무가 서 있는데, 그 뒤로 고층아파트 중상단부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어 자연성과 인공성이라는 극적 대비를 이루면서 이곳이 도시의 한가운데임을 새삼 일깨운다.
‘기억의 숲’에는 2017년 3월부터 현재까지 불이 꺼지지 않는 곳이 있다. 바로 ‘불의 정원’이다. 폐 철도를 도심공원으로 조성하기 위해 관정공사를 하던 중 땅속에서 나온 천연가스에 불꽃이 옮겨 붙어 꺼지지 않자 공사 장비를 그대로 둔 채 이곳을 불의 정원으로 보존하고 있다. 아무리 비가 내려도 꺼지지 않는 불의 정원은 ‘기억의 숲’ 명물로 자리하고 있다. 아이들과 이곳을 찾는다면 현장학습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메텔과 철이가 은하철도를 타고 우주로 여행하던 만화영화가 생각나게 하는 공간이 있다. 증기기관차가 금방이라도 하늘을 향해 날아오를 것 같은 형태로 동산위에 반쯤 걸려있다. 발상과 표현이 키치적이어도 동심으로 바라본다면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오게 한다. 동산위에서 햇볕에 반사된 시커먼 증기기관차는 어린 시절 그 생김새가 어찌나 무서워했던지 아버지 등 뒤에 숨어 사라질 때까지 고개를 들지 못했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증기기관차를 저만치 옆에 두고 폐 철길은 대잠고가도 밑을 지나 음악분수 광장으로 이어져 있다. ‘음악분수’광장으로 가는 길에는 데크로드로 되어 있고 좌우 일정한 간격으로 나무가 심어져 있어 이국적 느낌이 물신 난다. 벤치마다 독서하는 사람들, 소풍 나온 가족들, 젊은 남녀가 이어폰을 나눠 끼고 음악을 듣는 한가로운 오후 풍경이다.
공원 광장에 들어서면 한가운데 설치된 거대한 스틸조각작품이 크기와 무게감에서 보는 이의 시선을 압도한다. 이용덕의 ‘만남 2017’이다. 철판을 겹겹이 쌓아올려 왼쪽 가장자리와 가운데에 두 사람의 얼굴을 측면으로 표현했고, 가운데 얼굴형상 중앙을 뚫어 남녀가 나란히 왼쪽을 바라보는 형상을 하고 있다. 멀리서 하늘을 찌를 듯 우뚝 솟은 오벨리스크 형상의 신 철기시대 2017포항이 만남 2017의 중앙을 관통하면서 관람자의 시점에 따라 형태와 의미가 달라질 수 있는 독특한 시각적 배치로 되어있다. 특히 녹슨 철판의 직물성과 철판으로 제작되었지만 흰 석조물의 느낌을 가지게 하는 오벨리스크 형상이 텅 빈 공간을 채우며 대비를 이룬다.
거대한 이 두 작품 사이에 음악분수가 있다. 웬만한 공원에 가면 음악분수 하나쯤은 있겠지만, 이 곳 공원 광장의 음악분수는 확 트인 공간에 바닥에 깔린 대리석만이 공간의 경계를 나타내고 있어 물이 뿜어져 나오기 전까지는 이곳이 음악분수임을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자연스럽게 디자인 되어 있다. 휴일 음악분수 광장에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음악분수에 맞춰 물놀이 즐기는 사람들로 가득 찬다. 다시 이어지는 도심공원은 삼구트레니엔 아파트를 지나자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현대 도시들이 꿈꾸는 것이 있다면 바로 도시 한가운데 잘 가꾸어진 도심공원일 것이다. 폐 철길을 이용한 도심재생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는 곳이 프랑스 파리의 ‘프롬나드 플랑데’와 이것에서 착안한 뉴욕 맨해튼의 ‘하이라인 파크’이다. 포항의 센트럴 그린웨가 완공되면 먼저 조성된 용흥동에서 우현동까지 도시숲길까지 이어지게 되고, 그야말로 도심을 관통하게 된다. 효자역에서부터 구 포항역을 거쳐 학산역까지 철길이 품었던 옛이야기들이 다시 시작될 것이다.

김용진 작가

경북문인협회 회원, 디자인학 박사
국민대학교 테크노디자인 전문대학원 겸임교수
지역문화콘텐츠디자인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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