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보다 7년 젊게 살며 넓은 세상도 보았지요~
  • 경북도민일보
남들보다 7년 젊게 살며 넓은 세상도 보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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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6.1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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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적신고 늦어 7살 아래
남동생과 쌍둥이로 신고
내 인생 ‘큰 획’을 그어준
미용으로 사회생활 시작
결혼 하고나서 지금까지
새마을부녀회 등서 봉사
“남과 나를 사랑하는 방법”
흥해에서 가진 신소남씨의 전통혼례 광경.
심소남씨가 남편과 함께 포즈를 취했다.
합창단봉사활동시절.

심소남의 인생이야기<35>

흥해읍 매산리에서 4남매중 셋째로 태어났다. 사실은 호적이 7살이나 늦게 올라간 덕분에 다른 사람보다 훨씬 젊은인생(?)을 살고 있다.

실제로는 1942년 음력 7월에 태어났는데 아버지가 동네 이장한테 면사무소 출생신고를 부탁하고 느긋하게 있다가 7년 뒤에 늦둥이 막내 남동생을 낳고 출생신고를 하러가니 아예 호적이 없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부랴부랴 신고를 한 것이 동생과 쌍디(쌍둥이)로 올라가게 됐다.

그래도 호적에도 주민등록증에도 1949년생은 맞다.

매산리 촌에서 소학교를 졸업하고 먹고 살 궁리를 하다 일찌감치 미용기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매일 포항시내를 오가며 19살 때 배운 미용기술은 27살 결혼할 때까지 내 인생에 큰 획을 그어 주었다. 처음에는 육거리에서 기술을 배워 남구 동해면 도구에 가서 미용실도 해보고 강원도, 울릉도 등 어디 안가본데 없다. 세상 물정도 친구들 보다 일찍 알았고 미용기술로 많은 봉사활동도 했다.

미용실을 운영하며 시간 가는 줄 몰랐는데 매산리에 사는 9명의 친구들은 집에서 있다보니 대부분 시집을 다 가고 집에서는 결혼하라고 난리가 났다.

결국 신광면 냉수리 골짜기에 살던 이원국(79)씨와 선을 본 뒤 몇 개월 안돼 전통 혼례로 결혼했다. 그때가 27살. 친구들은 모두 시집가고 동네에서 제일 늦게 머리를 올렸다.

막상 결혼을 해 냉수2리에 들어와보니 기가 안찼다. 미용기술 배워 바깥세상을 너무 많이 돌아다녀서 그런지 갑갑했다. 그곳에서 20년동안 소도 먹이고 논농사 밭농사 지으며 살았는데 시집가서 몇년 동안은 많이 울었다. 너무 답답해서 친정간 김에 더 이상 (시댁)안 갈려고 했다가 꾸중만 실컷 듣고 온 적도 있었다.

그래도 아이들이 큰 힘이 됐다. 1987년 쯤 40대 후반 나이에 딸 둘, 아들 하나 3남매 교육을 핑계로 시내로 나오는 데 성공했다. 통학하기 쉬운 터미널 근처 집을 찾았는데 바로 지금 20여년째 살고 있는 이 죽도동 집이다. 시내로 나와서는 잠재됐던 활동력(?)이 살아나면서 신광에 있을 때부터 했던 새마을부녀회 활동은 물론 실버여성합창단, 적십자봉사단 등 왕성한 봉사활동도 했다.

신랑은 한전에 전기검침원을 했고 나는 폐식용유로 세탁비누를 만들어 시장에 파는 일을 시작했다. 통닭을 튀기고 남은 식용유로 때가 잘 빠지는 빨래비누를 만드는 일인데 봉사활동으로 우연찮게 시작한 것이 이제 생업이 됐다. 지금도 집 옥상에서 한번에 300~400장씩 만들어 죽도시장 도매상에 납품 하고 있다.

무엇보다 봉사활동이 주는 마음의 치유효과가 너무나 크다. 미용기술 봉사를 시작으로 새마을부녀회와 적십자봉사회 뿐 아니라 포항여성실버합창단이나 은빛봉사단을 하면서 요양원에 가서 합창하는 일에도 듣는 사람이나 부르는 사람 모두 위로를 받는 것을 보고 많은 걸 느꼈다. 봉사하는 일이 즐거우니 당연히 힘들지도 않았다.

하지만 요즘 먹고 살기가 어려워져서 그런지 봉사활동 인구도 점점 줄어드는 것 같다. 옛날에는 죽도동 2동만 부녀회회원들이 40명이 넘었는데 지금은 1, 2동 합쳐도 20명 남짓하다. 아마도 시내 주택가 인구가 줄어서 그런것 같다. 봉사는 남을 위해서 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자료제공=콘텐츠연구소 상상·도서출판 아르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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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씨 2020-06-20 16:39:07
손자분이 매우 잘생기셨을것같은 느낌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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