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래시장 살리기에서 오프라인 상권 살리기로
  • 경북도민일보
재래시장 살리기에서 오프라인 상권 살리기로
  • 경북도민일보
  • 승인 2020.08.2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 끼 분량의 식자재 배달부터
집·차까지 다루는 온라인 시장
재래상권 vs 현대상권 구도 퇴색
도심부 전체 몰락 걱정해야할 때
섬세한 상생·협력정책 고민해야

영원히 승승장구할 것 같던 대형마트들이 시름시름 앓고 있는 형국이다. 이마트, 롯데마트 등 대표적인 업체에서도 상당수 매장들을 조만간 폐쇄할 예정이라고 한다. 물론 갑작스러운 일은 아니다. 대형마트들의 매출액은 팬데믹 이전인 2019년에 이미 꺾이는 추세를 보였다. 팬데믹 사태는 어차피 다가올 변화들을 좀 더 가까이 당긴 것에 불과하다.

대형마트가 쇠락하는 이유는 크게 보아 두 가지이다. 첫째는 계속되어온 대형마트의 입지 제한 정책이다. 재래상권 살리기라는 차원에서 중앙정부는 물론 각 지자체에서도 대형마트의 도심권 입지를 막아왔다. 주말영업, 24시간 영업처럼 대형마트의 필살기라 할 수 있는 영업방침도 금지됐다. 이 때문에 대형마트의 숫자 자체가 줄어든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치밀한 마케팅으로 움직이는 물류업체의 전략을 무디게 했고 결과적으로 그 성장을 막아온 것도 사실이다.

둘째는 최근 들어 급격히 점유율을 올리고 있는 새로운 경향의 온라인 쇼핑이다. 온라인 쇼핑이 소량·긴급배송 서비스를 시작한 것이다. 이제 한 끼 식사 분량의 식자재까지도 문 앞에, 그것도 새벽시간에 배달해주기에 이르렀다. 1인가구가 많고 매장에 갈 시간은 부족한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대규모 매장을 계속 유지해야 하는 대형마트로서는 매장도 없이 매출을 앗아가는 보이지 않는 경쟁자의 출현에 속이 탈 수밖에.

재래상권을 보호하기 위해 대형마트를 계속적으로 억제해온 와중에 이들 마저 쇠락하기 시작한다는 것은 대체 무슨 의미일까? 그렇다면 도심의 기존 재래시장에게는 유리한 여건이 되는 것일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오히려 재래시장에 더 치명적일지도 모른다. 소량의 식자재 배송이야말로 오히려 재래상권의 겹치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쇼핑 문화가 고령층에도 파급되기 시작한다면 재래시장으로서는 최후의 고객을 잃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에 비해서 대형마트 업체가 받을 피해는 실제로는 미미하다. 인터넷 쇼핑을 이끄는 주체 또한 따지고 보면 대형마트를 소유한 대기업들이기 때문이다. 그들로서는 축척된 자본과 물류 노하우를 오프라인에서 온라인 중심으로 재편해간다는 의미이지, 사업영역 자체가 사라지는 건 아닌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들로서는 지긋지긋하던 대형마트 억제 정책을 피해서 자유롭게 사업영역을 넓히는 계기일 수도 있는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재래시장 대 대형마트’라는 과거의 구도는 이제 의미가 퇴색하고 있다는 점이다. 팬데믹 까지 겹치면서 온라인 구매의 범위는 이제 거의 모든 형태의 제품으로 넓어지고 있다. 심지어는 주택이나 자동차 까지도 다루는 인터넷 시장이 나타나고 있다. 진화한 온라인 구매행태가 이제 모든 세대와 문화를 아우르기 시작한 것이다. 90년대에 대형마트라는 강자가 나타났다면, 이제는 그보다 더 크고 강한 ‘온라인 쇼핑’이 등장했다는 것이다. 도시의 소매업 현황은 빠르게 ‘오프라인 대 온라인’ 구도로 전환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이런 새로운 구도 속에서 이제 ‘대형마트 억제’라든가 ‘재래시장 살리기’ 같은 과거의 정책은 이미 호흡을 다 잃은 게 아닐까. 서구에서는 이미 백 년 전에 시작된 대형마트 억제책이 지금의 우리나라의 현실을 반영할 수는 없다. 이런 정책들이 시행 된지도 20년이 넘었지만 재래시장이 살아났다거나 기존 도심상권이 부흥했다는 통계적 근거는 희박하기만 하다. 오히려 이런 정책들이 대형마트를 외곽으로 보내 버리면서 도심부를 향하는 소비자는 더 줄어들었고, 결과적으로 재래시장도 더 타격을 받게 되었다는 분석도 있다.

이제 재래상권이니 현대상권이니 하는 도식적 구분에 매달릴 때가 아니다. 오프라인 상권의 소멸로 도심부 전체의 몰락을 걱정해야 할 때이다. 소매시설들이 줄어들면서 도심 상권 자체가 텅텅 비어갈 수 있다. 이미 그 전조는 지방 도시들에서 역력히 나타나고 있다. 그나마 흡인력 있는 대형 매장들마저 온라인으로 전환된다면 그 곁에서 발생하는 소소한 업종들도 자동으로 사라지게 된다. 이렇게 되면 지금 온 힘을 다해 진행하는 각 지역의 도심재생도 근본적으로 흔들릴 수밖에 없다. 발걸음이 사라지면 재생의 희망도 사라지기 때문이다.

재래상권 대 대형마트라는 도식적인 구분이 아닌, 현실 인식에 기초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한 시기이다. 구분하고 규제하는 것은 사실 매우 편한 정책이다. 하지만 지금은 섬세한 디자인에 근거한 고민스런 정책이 필요한 시기이다. 육식동물도, 초식동물도 한 초원에서 조화되어 살아가는 생태계처럼, 크기도 기능도 다른 소매 업태들이 도심부에서 서로 상생·협력할 수 있는 그런 모델을 만들어가는 도시라야 이 시대를 넘어설 수 있을 것이다.
김주일 한동대 공간환경 시스템 공학부 교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기사
  • 경북 포항시 남구 중앙로 66-1번지 경북도민일보
  • 대표전화 : 054-283-8100
  • 팩스 : 054-283-5335
  • 청소년보호책임자 : 모용복 국장
  • 법인명 : 경북도민일보(주)
  • 제호 : 경북도민일보
  • 등록번호 : 경북 가 00003
  • 인터넷 등록번호 : 경북 아 00716
  • 등록일 : 2004-03-24
  • 발행일 : 2004-03-30
  • 발행인 : 박세환
  • 대표이사 : 김찬수
  • 경북도민일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북도민일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HiDominNews@hidomin.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