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후반부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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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후반부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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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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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태어나서부터 죽기까지 영아기, 유아기, 아동기, 청소년기, 성년기, 중년기, 노년기라는 생애주기를 가진다. 부모의 보호를 받는 시기를 지나 성년기가 되면 세상에 나아가 홀로 열심히 살아야 한다.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면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세월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르고 바쁘게 살아간다. 중년기가 되면 근본적으로 내면부터 달라진다. 지난날들을 뒤돌아보며 자신의 삶의 의미를 묻는 실존적 가치에 대해 고뇌한다. 가끔 친구나 직장동료들이 암이나 사고로 사망하는 경험을 하게 되면서 생의 유한성에 대한 허무와 함께 자신의 죽음 또한 추상적이거나 가설이 아님을 실감하면서 외적인 세계에 모두 쏟아 붓던 삶의 에너지가 내면으로 향하기 시작한다. 노인기가 되면 신체의 각 부분에 노쇠현상이 나타난다. 기력이 떨어지고 인지나 감각기능도 저하된다. 사고는 경직되어 자신의 생각과 판단만이 옳다고 여기며 다른 사람의 의견이나 입장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같은 말이나 같은 상황일지라도 젊은 사람들에 비해 더 서러워하고 노여워한다. 홀로 소외되고 고립된 시간 속에서 지나온 세월의 회한으로 우울감은 심화된다.

불과 수십 년 전만 하더라도 사람들은 노년기에 대해 그리 신경 쓰지 않았다. 사회적로는 활용가치를 상실한 비생산적인 세대로 치부했고 노년기에 접어든 사람들 개개인도 은퇴와 함께 사회·가족에 기여하는 역할을 상실하여 자신은 세상으로부터 폐기되었다고 여겼다. 구체적인 인생의 가치관이나 목적도 없이 그저 안락하게 여생을 보내면 된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비약적인 생활수준의 향상과 의학기술의 발달로 평균수명이 점점 길어져 인생 100세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평균수명이 늘어날수록 그와 비례하여 노년기의 삶도 늘어난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60세를 넘어 직장에서 정년퇴직하면 그때부터 노년의 삶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100세까지 산다면 30~40년의 삶이 더 남은 것이다. 이는 인생전체 생애주기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사람들은 노년기를 어떤 경제적 수준을 유지하며 사느냐에 주안점을 두고 미리 준비한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영아기, 유아기, 아동기, 청소년기를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삶 전체의 삼분의 일 이상을 차지하는 노년기의 그 긴 시간을 어떻게 살 것이냐에 대해서는 별다른 관심을 가지지 않고 대비하지도 않는다. 노년의 쓸쓸하고 우울한 삶이 지루하게 지속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사실 인생에서 노년기야 말로 자녀의 교육문제나 가족부양의 책임과 제약에서 벗어나 오롯이 자신만의 인생을 구가할 수 있는 가장 자유로운 시기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이 목적이나 신념을 가지지 못하고 과거만을 회상하며 무기력감과 외로움 속에 시간을 보내다 고독하게 죽어간다.

세월의 흐름을 막을 수 없듯 육신이 노쇠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문제는 심리적 노화이다. 윤기 나는 머리카락, 탱탱한 피부와 붉은 입술을 가진 청년이라 할지라도 꿈이 없고 인생을 즐길 줄 모르며 모든 현상과 사물을 회의적으로 바라본다면 그는 노인이다. 백발의 머리카락에 주름진 얼굴일지라도 존재의 이유를 찾아 미래지향적이며 적극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언제나 청춘이다.

해리 리버만(Harry Lieberman)이라는 사람이 좋은 예다. 81세의 그는 매일 체스를 두며 시간을 보냈다. 어느 날 체스상대가 되어 주었던 사람이 몸이 불편하여 클럽에 오지 않아 멍하니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자원봉사자의 권유로 그림을 배우게 되었다. 그는 열정적으로 10주 동안의 레슨을 수료했고 이후 놀라운 재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거장들에게 원시적 눈을 가진 미국의 샤갈이라 불리며 극찬을 받았고 백한 살이 되던 해에 스물두 번째 개인전을 열어 세상을 놀라게 했다. 그는 나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심장의 고동이 멈추기 전까지는 그 어떤 것도 늦지 않았다. 다만 우리가 시도하지 않고 있을 뿐이다”라고.

어디 이뿐이랴! 서구 철학사의 가장 영향력 있는 중심인물로 꼽히는 플라톤은 50세에 겨우 학생이었고, 소크라테스는 70세에 비로소 철학을 꽃피우며 악기 연주를 배웠다. 미켈란젤로는 죽을 때까지 시를 썼으며 90이란 나이에 발판 위에 올라가 로마 교황청 예배당의 천장을 조각했다. 톨스토이는 70세가 되어 부활이라는 명작을 탈고했다. 노년기는 인생의 하향 길이 아니다. 활동적이고 창조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자유로운 시기이며 원숙해진 인격이 꽃을 피우고 통합을 이루는 인생의 절정기이다.

“시작이 좋아야 끝도 좋다”는 말도 맞는 말이지만 나는 “끝이 좋아야 모든 게 좋다”라는 말을 더 수긍한다. 나뭇잎도 떨어지기 전에 단풍들 때가 가장 아름답고 과일도 익어 수확할 때쯤이 가장 탐스럽다. 노년기는 남은 삶을 아름답게 가꾸어 유종의 미를 거두는 시기이지 한탄과 무기력 속에 죽음을 기다리는 시기가 아니다. 완고한 고집과 지나친 욕심을 버리고 열린 마음으로 꿈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배우는 것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그렇게 살다 그 꿈길 어느 한 자락에 쓰러져 떠날 때 생은 아름답게 갈무리된다. 이철우 시인·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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