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아닌 인간의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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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아닌 인간의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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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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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시아스는 신에게 도전했다. 그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반은 사람이고 반은 동물인 반인반수 사티로스 중 하나다. 어느날 마르시아스는 아테네가 버린 피리, 아울로스를 발견한다.

아울로스는 메두사의 죽음을 슬퍼하는 자매들의 목소리를 본떴다. 여신 아테네가 만든 이 악기는 극한 감정마저 표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연주할 때 자신의 얼굴이 일그러진다는 이유로 아테네는 악기를 땅에 버리면서 저주를 내린다. ‘누구든 이 피리를 연주하는 자에게는 고통이 따르리’

마르시아스는 숲에서 주운 피리의 아름다운 소리에 반한 나머지 열심히 숙련해 경지에 오르게 된다. 예술적 재능을 시험하고 싶었던 그는 음악의 신 아폴론에게 도전장을 내민다.

리라를 연주하는 아폴론을 상대로 첫판에 무승부를 만들어 낸 마르시아스. 참을 수가 없었던 아폴론은 악기를 거꾸로 들고 연주하자는 제안을 하고, 현악기와 달리 거꾸로 들고서는 소리를 낼 수 없었던 마르시아스는 결국 승부에 지고 만다.

승리를 차지한 아폴론은 마르시아스의 살가죽을 산채로 벗겨버리는 벌을 내린다. 감히 신에게 도전장을 내밀고 신의 경지에 이르는 소리를 냈던 마르시아스는 결국 그렇게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예술에 대한 욕망, 신이 되지 못하는 자의 한계,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현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월하고 싶은. 예술 역사상 수 많은 화가들은 마르시아스를 주제로 그림을 그렸다. 예술가 애니쉬 카푸어(Anish Kapoor, 1954년생)는 마르시아스를 가로 150미터, 세로 10층 높이로 재탄생했다. 카푸어의 마르시아스는 거대하다. 그리고 붉다. 마치 살이 벗겨져 드러난 핏줄처럼.

카푸어의 마르시아스가 테이트 모던 미술관에 설치됐을 때 작품은 미술관 전체를 장악했다.

카푸어는 의도적으로 작품 전체를 한눈에 볼 수 없도록 설계했다. 마치 우리가 우리의 삶을 한눈에 꿰뚫어 볼 수 없는 것과도 같은 것이었다. 마르시아스의 살이 벗겨진 붉은 모습은 인간의 욕망을, 인간의 고통을, 인간의 본질을 나타내는 것이리라. 삶의 어디쯤에 있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죽음에 이르는 길은 또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 거대한 마르시아스는 삶의 모호함을 포함하는 듯하다.

작곡가 아르보 패르트(Arvo Part, 1935년생)는 이 작품을 마주하고 자신의 죽은 몸을 마주하고 있는 것 같았다고 회상한다. 또한 시간이 왜곡돼 미래와 현재가 동시에 일어나는 것 같았고 갑자기 자신의 인생이 다른 관점에서 보였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에게 남은 시간 동안 무엇을 성취 할 수 있는지를 자문했다고 한다.

‘라멘타테’는 이렇게 카푸어의 ‘마르시아스’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한 곡이다. 페르트는 “죽은 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산 자를 위한 애도를 썼다”고 말한다. 명상적이기까지 한 이 곡은 마르시아스의 아픔을, 나아가서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는 인간의 삶을 위로하는 듯 차분히 흐른다.

가만히 듣고 있노라면 마음이 뜨거워지고 눈시울이 적셔진다. 패르트는 음악을 통해 우리에게 말하는 듯하다. 괜찮다고, 너만 그런 게 아니라고, 삶은, 그런 것이라고.

‘라멘타테’는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곡으로 2003년, 테이트에 전시된 ‘마르시아스’ 앞에서 초연됐다.

아르보 패르트는 아방가르드 작곡가였으나 틴티나불리라 명명한 새로운 스타일의 음악을 만들어갔다. 중세 챈트음악에서 영향을 받아 음악의 군더더기를 빼고 음악의 본질로 돌아가고자 했을 터. 그래서 그의 음악은 명상적이다. 그리고 투명하다. 그의 음악은 음악의 본질을 건드리는 동시에 인간의 본질을 어루만진다.

패르트의 대표작 중 ‘거울 속의 거울’이라는 작품이 있다. 삼화음과 스케일을 사용해 만든 이 곡은 그야말로 음악의 태초로 돌아간 듯 가장 기본적인 화음으로 우리의 가슴을 울린다.

애니쉬 카우어의 작품 역시 작품을 통해 삶의 철학을 말한다. 단색을 사용해 압도적인 사이즈의 작품을 만드는 카푸어는 우주를 포함해 미사여구를 제거하고 명상의 상태에 들어가게 만든다.

카푸어의 작품 중 ‘하늘 거울’이란 작품이 있다. 하늘을 향해 서 있는 둥근 거울. 거울은 하늘을 있는 그대로 비춘다. 하늘이 맑을 때 거울은 맑다. 하늘이 어두우면 거울도 어둡다. ‘하늘 거울’과 ‘거울 속의 거울’, 서로가 서로를 비추고 이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다.

그 누구보다 아름다운 소리를 냈던 마르시아스. 그만큼 고통스럽게 죽어야 했던 예술가의 삶. 마르시아스의 살이 벗겨져 죽임을 당할 때 그의 음악을 들었던 동료들은 눈물을 흘렸고, 그들의 눈물과 함께 마르시아스의 피는 흘러 강이 됐다.

강은 흐르고 또 흐른다. 삶과 죽음, 하늘과 땅, 음과 양, 빛과 그림자. 거울 속 거울, 하늘을 비추는 거울, 거울을 비추는 하늘… 그것은 서로를 비추고 그것은 그대로 아름답다.

노엘라 바이올리니스트 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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