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라 존스라면 아프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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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라 존스라면 아프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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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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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성은의 사적인 LP
 

노라 존스의 ‘Come away with me’

괴이한 전동소리

어렸을 때부터 가장 무서워했던 건 치과에서 나는 였다. 끼이이이하하하학, 쿠오오오오로로록, 지이이이이아아아앙. 이에 더해 환자들의 신경질적인 신음이 들려오면 나는 옴짝달싹 못하고 얼어붙었다. 초등학교 때 거행했던 포경수술이나, 최초로 방문한 유령의 집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이건 소리만으로도 심박수를 치솟게 했고, 온몸을 불안에 떨게 했다.

과자와 요구르트를 좋아했던 나는 단 것을 탐한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 아말감으로 때우는 건 기본이고, 성인이 되어서는 신경치료, 금니, 임플란트까지……. 지출한 금액만 해도 제법 될 것이다. 과자를 끊어야 치과를 끊을 수 있을 텐데, 아직은 욕구가 의지보다 강한 모양이다. 이 글을 쓰면서도 과자 한 봉지를 보란 듯이 뜯어놓고 있는 걸 보면.



Don’t know why

그러니깐 나는 오늘 오전, 치과에 다녀왔다. 이제는 치과 소리가 귀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베란다 밖으로 들리는 공사장 소리처럼 익숙해진 탓도 있고, 심리적인 거부로 무의식이 차단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여전히 치과 의자는 불편하게 기울어져 있고, 간호사와 의사의 친절함도 모두 거짓인 것만 같다. 나는 그들을 좋아하고 존중하지만, 100% 믿지는 않는다. 안 아픕니다. 이 말을 매년 듣고 나면, 이 정도 통증은 안 아픈 것이라고 스스로 세뇌하기도 하니까.

노라 존스의 음악이 들려왔다. 날카로운 금속성 전동 소음 사이로, 어느 공사장에서 바위를 깨부수고 있는 것만 같은 폭발적인 소음 사이로, 한 줄기 들려오는 여인의 나른한 목소리. 분명 노라 존스였다. 그 순간 나는 기억이 이리 오라는 데로 빨려 들어가 버렸다. 나의 이십 대에 마음의 안정을 준 이 앨범이 돌연 내 뒤에 나타나 어깨를 주무르고 있는 것만 같은 이 기분. 나는 멍해진 채 의사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입을 벌리고 치료를 받았다. 귓가에는 ‘Don’t know why’가 흐르고 있었다. I don’t know why I didn’t come, I don’t know why I didn’t come…….



영혼의 안정

돌이켜보면 20대 무렵 집보다 오랜 시간을 보냈던 곳은 카페였고, 어느 시간대나 흘러나온 음악이 바로 노라 존스였다. 그녀는 오후의 햇살 아래서, 노을의 황홀 아래서, 밤의 침묵 아래서 조용히 자신만의 톤으로 노래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순간 어떤 평온을, 앞으로 다가올 인생에서 잊어버릴지도 모를 영혼의 안정을 느끼고 있었다. 분명히 그랬다. 그러던 노라 존스가 내 귓가에서 사라져 버린 건 어쩌면 타인의 무례한 평가 때문이었다. 기타리스트이자 나의 영어 선생님 반스는 그리스 출신으로 록에 자신을 헌신한 진지한 청년이었다. 나에게 좋아하는 음악을 물었을 때 나는 노라 존스라고 답했고, 그는 ‘스노라 존스?’라고 되물었다. 내가 노라 존스라고 다시 말하자 그는 노라 존스의 음악은 늘 졸려서 슬리핑 노라존스라고 불러야 한다고 말했다. 스노라 존스. 당황한 나는 멋쩍게 웃었고, 그는 덧붙여 ‘마치 엘리베이터 음악 같지?’라며 한 뮤지션을 비하했다. 엘리베이터 음악이라니. 바흐나, 쇼팽, 모자르트와 드뷔시가 울고 갈 노릇이다. 엘리베이터 음악은 어느 음악보다 안정을 주는 명곡이기 때문이다.

나는 다시 현재로 돌아와 치과 의자에 앉아 있다. 의사 선생님은 상태가 괜찮으니 관리를 잘하라고 말하고 떠난다. 노라 존스의 목소리는 사라지고 없다. 클래식 피아노 곡이 흐물흐물하게 연주되고 있을 뿐이다. 어, 노라 존스가 분명 나왔었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만, 누구에게라도 물어본 마음은 없다. 어쩌면 그녀를 불러들인 건 오직 나였을 것이다. 긴장한 내가 가까스로 떠올릴 수 있는 영혼의 안정. 스노라 존스이건, 엘리베이터 음악이건 상관없다. 그녀는 한 시대를 풍미한 그래미의 여왕이었고, 전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재즈 아티스트다. 치과를 나서는 나의 발걸음은 보다 가볍다. 절로 콧노래가 새어 나온다. I don’t know why I didn’t come, I don’t know why I didn’t come……. 오성은 작가(동아대 한국어문학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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