멩덴, ‘종이의 집’, 그리고 살바도르 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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멩덴, ‘종이의 집’, 그리고 살바도르 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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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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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멩덴(Daniel Mengden).

KBO리그 KIA 타이거즈 소속 미국 투수. 1993년 미국 텍사스 출생인 그는 2018~2019년을 메이저리그에서 선발투수로 뛰다가 2021 시즌 한국 무대에 섰다.

KIA 타이거즈 팬이 아니라면 멩덴에 관심을 가질 가능성은 작다. 그러나 그가 투구하는 모습을 한 번이라도 봤다면 멩덴이라는 투수를 잊기는 어려울 것 같다.

멩덴의 콧수염 때문이다. KBO리그에서 뛰는 외국인 투수들은 수염을 많이 기른다. 키움 히어로즈의 에릭 요키시는 턱수염이 모발처럼 풍성하다. 멩덴은 콧수염을 기르는 수준에 머물지 않고 양 끝을 말아 올려 고정시켰다. 카이저(Kaiser) 수염이다.

투수가 포수의 사인을 받는 순간은 언제나 가벼운 긴장감이 돈다. 주자 만루의 역전 찬스라면 언제나 조마조마하다. 중계방송을 시청하다가 코 양옆으로 말아 올린 맹덴의 수염을 볼 때마다 미소가 번진다. 혹시, 공을 기다리는 타석에 선 타자들도 그러는 것 아닌지.

한국 남자 중에서 카이저 수염의 남자를 만나기는 아주 어렵다. 수염에 대한 터부가 없는 외국에서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카이저 수염은 외국에서도 ‘올드 패션’으로 취급받는다.



독일 제2제국의 황제 빌헬름 1·2세

콧수염을 위쪽 방향으로 기르는 것을 언제부터 카이저 수염이라고 불렀을까. 독일 제2제국 황제로 인해서다. 독일어로 황제가 카이저(Kaiser). 1871년 독일통일을 이룩한 이가 프로이센의 왕 빌헬름 1세(1797~1888). 북쪽의 변방에서 일어난 프로이센 왕국은 빌헬름 1세에 이르러 사분오열되어 있던 독일 연방을 통일해 제2제국을 창건하고 황제에 오른다. 그가 죽자 손자인 빌헬름 2세(1859~1941)가 1888년 황제에 즉위해 장장 30년을 통치했다. 빌헬름 1세와 2세는 재위중 콧수염을 위로 기르는 패션을 유지했고 이 수염을 따라 하는 남자들이 생겨났다. 독일인들은 이런 모양의 콧수염을 황제의 수염이라는 뜻으로 ‘카이저 수염’이라고 불렀다.

우리나라에서 일찍이 카이저 수염을 유행시킨 사람은 1971년 대통령 후보로 출마한 진복기라는 인물이다. 당선 가능성이 없는 줄 알면서도 이름을 알리려 대통령선거에 출마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들을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진복기만은 예외다. 바로 카이저 수염 때문이다. 남자의 경우, 수염만큼 강렬한 이미지를 만드는 것도 없다.



‘종이의 집’ 범인들의 가면

내가 최근 카이저 수염에 환호한 것은 넷플릭스 드라마 ‘종이의 집’(La Casa de Papel)으로 인해서다. 2018년 처음 넷플릭스를 알게 된 계기가 바로 ‘종이의 집’이었다. 교수와 범죄 전문가들이 벌이는 상상 초월 범행인질극이다. 조직원들은 두뇌가 비상한 기획자를 ‘교수’로 부른다. 2017년 시즌1으로 시작해 현재 시즌 5까지 왔다. 넷플릭스 톱 드라마다.

은행털이의 총감독은 교수(프로페서)다. 교수를 믿고 따르는 범죄 전문가들의 이름은 도쿄, 덴버, 리우, 베를린, 헬싱키, 보고타, 스톡홀롬, 팔레르모, 나이로비…. 완전범죄를 기획하면서 총감독인 교수는 조직원들에게 개별적인 도시명을 주고 이름 대신 부르게 한다. 보안 유지와 함께 사적인 감정이 단체행동에 틈입하는 것을 막으려는 조치다. ‘종이의 집’은 지폐를 찍어내는 은행이라는 뜻과 사상누각(沙上樓閣)이라는 중의적 의미를 담고 있다.

범인들은 대치중인 경찰들 앞에 나타날 때 가면을 쓴다. 인질들에도 가면을 씌운다. 경찰은 누가 인질이고 누가 범인인지 헷갈린다. 가면의 익살스러운 표정이 대중 심리를 묘한 방향으로 움직인다.

가면의 주인공은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1904~1989). ‘달리를 싫어하는 사람은 많지만 달리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은 드물다’는 말은 과거에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유효하다. 바로 ‘기억의 끈덕짐’이라는 1931년 작품 덕분이다. 연체동물처럼 축 처져 걸려있는 늘어진 시계를 보는 순간, 두뇌는 충격의 소용돌이에 휩싸인다. 금제(禁制)의 영역에 들어가 보아서는 안 되는 것을 본 것처럼 불안하다.

나는 ‘파리가 사랑한 천재들’의 대상 인물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달리를 후보군(群)에 포함했지만 초반에 탈락했다. 달리가 초현실주의 화가로 이름을 알린 곳이 파리이긴 하지만 고향인 스페인 카탈루냐 지역을 가보지 않고는 달리의 스토리를 완성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러서다.

프로이트, 피카소, 키 데리코
달리는 1904년 5월11일 카탈루냐 피게라스에 태를 묻었다. 피게라스는 피레네산맥이 지중해로 풍덩 빠지는 지점에 있는 작은 도시. 어려서부터 그림에 재능을 보인 그는 열다섯 살 때 피게라스 극장에서 열린 그룹전에 참가했다. 1922년, 열여덟 살에 마드리드의 ‘산 페르난도’ 왕립 아카데미에 입학해 기숙사 생활을 한다.

천재들이 대개 그렇듯 그는 모범생과는 거리가 멀었다. 아카데미 시절은 순탄하지 않았다. 아버지와의 갈등도 곡절(曲折)의 한 축이 되었다. 최초의 개인전은 1925년 바르셀로나 달마우 화랑에서 열렸다. 스물두 살 때인 1926년, 시험을 거부해 아카데미에서 퇴학을 당한다. 우리가 왕립아카데미 시절을 눈여겨 봐야 할 대목은 퇴학이 아니다. 아티스트에게 졸업장 따위가 무슨 대수인가.

그가 아카데미 기숙사에서 읽은 책이다. 기숙사 시절 그는 스페인어로 번역된 ‘꿈의 해석’을 접한다. 비범한 미술학도는 빈의 천재 정신분석학자가 쓴 책에 빨려 들어간다.

모더니즘을 맹신해온 유럽세계는 1차세계대전 종전 이후 사상적 혼돈에 휘말린다. 이때부터 세계는 비로소 ‘미친 의사’ 취급을 당하던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이론에 귀를 기울인다.

프로이트 사상은 다양한 분야에 걸쳐 폭넓은 영향을 미친다. 문학에서는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미술과 영화에서 ‘초현실주의’ 등으로 나타난다. 백남준은 뉴욕에서 아방가르드 음악을 시도하면서 프로이트를 음악에 융합시키고자 모색했다.

프로이트는 초현실주의 예술운동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 인물이다. 달리의 작품들을 보면 여러 작품에서 숫 사자머리가 등장한다. 갈기가 풍성한 숫 사자머리를 성적 충동의 상징이라고 여긴 프로이트에 영향을 받은 결과다.

그가 프로이트를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보여준 단적인 사례. 1938년 프로이트가 나치의 압제를 피해 런던으로 망명했을 때 그가 프로이트를 찾아갔다는 사실이다. 그는 구강암으로 오늘내일하던 정신분석학자의 모습을 스케치했다.

고향 카탈루냐를 떠나지 않으려던 그에게 파리 정착을 권한 이는 파블로 피카소와 호안 미로였다. 1930년 파리로 갔다. 그는 처음에는 회화보다는 영화에 더 끌렸다. 영화라는 장르가 초현실주의를 구현하기에 더 적합하다고 본 것이다. 파리를 선택한 것도 파리가 영화 제작에 환경이 좋다고 판단해서다. 실제로 17분짜리 극영화 ‘안달루시아의 개’를 공동제작했다.

파리 생활 초기 피카소는 동향인 그를 여러모로 도왔다. 거트루드 슈타인 같은 수집가를 비롯해 초현실주의 예술가들을 달리에게 소개했다. 우디 앨런의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에 보면 달리가 파리의 카페에서 내로라하는 작가·예술가들과 어울리는 장면이 나온다.

우리는 지금 달리를 르네 마그리트와 함께 초현실주의 화가로 기억하지만 그는 평론, 소설, 시나리오, 디자인과 같은 여러 분야에서 재능을 보였다. 하지만 여러 장르를 돌고 돌아 그가 닻을 내린 곳은 회화다. 그림에서 그에게 영향을 준 사람은 ‘키 데리코’다. 그는 여러 작품의 모티브를 ‘키 데리코’에서 차용한다.
초현실주의 예술가들은 이념적으로 공산주의와 가까웠다. 그러나 달리는 공산주의에 맹목적이지 않았다. 스탈린 정권이 예술이념으로 공표한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대해서 그는 거침없이 반대했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예술가의 생명인 자유로운 상상력을 질식시킨다고 주장했다.

1940년 파리가 나치에 점령당하자 아내 갈라와 후방 아르카숑으로 피난 갔다가 결국 미국행을 선택한다. 미국에 1949년까지 머물며 다양한 예술 활동을 이어갔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 우리가 달리와 동일시하는 작품 ‘기억의 지속’은 어떻게 태어났을까. 그가 여덟 살 연상의 유부녀 갈라 엘뤼아르와 사랑에 빠지자 고향의 아버지는 아들을 파문했다. 달리는 고향에서 냉대를 받았고, 경제적으로도 나락에 떨어졌다. 그는 고향과 가까운 카다케스의 작은 어촌으로 가 단칸방을 빌렸다. 달리는 이 어촌에 머물던 1931년 문제의 ‘기억의 지속’을 그렸다. 이 지점에서 미술사학자 로버트 래드퍼드가 쓴 ‘달리’의 한 대목을 읽어본다.

‘절벽의 헐벗과 거친 윤곽선이라든가 수정처럼 맑은 하늘빛은 확실히 그곳에서 따온 것이지만, 텅 비어 있는 거의 사막 같은 그림 속의 공간은 정신 속의 지형학, 곧 꿈의 풍경 쪽에 훨씬 더 가깝다. 그림을 보는 사람의 마음속에 생기는 불안감은 거리라든가 알아볼 만한 표지, 하루의 시간, 기온 등에 대한 실마리가 없다는 데서 나온다. 이 그림 속 풍경의 온도는 마치 미지의 행성이나 되는 듯이아주 뜨겁거나 아주 차가울 것 같다. 어느 것 하나 움직이거나 소리를 내지 않는 침묵의 무대, 얼어붙은 악몽 속 같다. 이들 작품의 망망한 지평선은 광장 공포증과 유사한 무한대의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이 작품은 현재 뉴욕현대미술관(MOMA)이 소장 중이다. 20세기 화가 중에서 달리처럼 유명하며 강력한 시각적 영향력을 행사한 사람이 또 있을까. 미술과 패션과 광고, 그리고 대중문화 전반에 걸쳐. 달리는 둔탁한 카이저 수염에 초현실성을 부여해 예술로 승화시켰다. 일찍이 이미지가 곧 메시지라고 통찰한 이가 발터 벤야민이다. 이젠 ‘달리의 수염’이라고 불러야 한다.

‘종이의 집’은 중독성이 강하다. 일단 한번 보면 멈추기 힘들다. 달리도 그렇다. 청명한 이 가을 뜻밖에도 ‘기억의 지속’을 감상하는 중이다. 조성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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