갯마을 재생, 차차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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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마을 재생, 차차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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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2.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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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일의 도·시·공·감

작년 이맘때 근처에서 어떤 드라마가 촬영 중이라는 소문을 들었었다. 구룡포, 청하시장이나 곤륜산도 등장한다고들 했다. 내가 사는 곳이 텔레비전에 나와 멋진 주인공들의 배경이 된다는 것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근사한 재미이다. 당시 챙겨보지 못했던 이 드라마를 이번에야 뒤늦게 보게 되었다. 묵혀 둔 호기심에 단숨에 정주행해 버린다. 좀 아쉽기도 했다. 배경은 포항, 영덕인데 드라마 설정은 강원도 어딘가로 되어 있었다. 듣기로는 지역으로서도 상당한 제작 지원을 했다는 것 같은데…. 아무튼, 그건 본론이 아니니 그렇다 치고.



줄거리야 단순하다. 서울 생활을 하던 자존심 센 치과의사인 그녀. 경쟁에 치이고 방황하다 도착한 어딘지도 모를 한 어촌마을. 우연히 들린 그곳에서 인간적인 만남을 경험하면서 삶의 보람을 찾게 된다는 내용이다. 멋진 배경의 사진 한 컷만으로도 많은 것을 담아내곤 하는 그녀들의 감성, 말하자면 2~30대 여성의 취향을 잘 반영하는 트렌디 드라마랄까. 그런데 이 드라마를 보는 내내 지방도시의 현실과 겹쳐 보이는 것은 왜일까.



일종의 직업병인지, 드라마가 도시재생의 관점으로 보인다. 갯마을은 ‘지방도시’, 주인공은 ‘유입된 인구’를 상징하는 것 같다. 그렇게 보면 30대 전문직 여성이 지방으로 내려와 정착한다는 설정, 비록 드라마일지라도 뭔가 시사하는 바가 있다. 게다가 이 드라마는 주인공 입장에 몰입하는, 젊은 2~30대 여성의 인식을 담고 있지 않은가. ‘지방에 사는 것’에 대한 ‘그녀’들의 인식을 한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우리보다 먼저 지방소멸 위기를 연구해 온 일본의 학자들은 지방도시의 운명은 결국 20~30대 여성에 달려 있다고 결론 내린 바 있다. 도시를 죽이고 살리는 열쇠가 그녀들 손에 있다는 것이다. 자연적인 인구증가에는 출산이 필요하니, 당연히 그녀들의 결심과 노력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더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다. 도시의 활력도 2~30대 여성들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이다. 의식주의 모든 스타일 뿐 아니라, 장소의 유행도 이들이 먼저 불을 붙인다. 경리단길이니 황리단길이니 하는 ‘핫플레이스’도 먼저 젊은 여성들이 밟기 시작하며 만들어지곤 한다. 그녀들이 점을 찍고 나면 그제야 남성들도 뒤를 따르는 패턴이다.



그렇게 보면 도시재생이란 것도 의외로 간단하다. 2~30대 여성이 좋아하고 머물고 싶은 도시만 만들면 된다. 반면, 이들이 피하는 지역이라면 그만큼 소멸 위기가 가깝다. 지방소멸에 있어 리트머스와 같은 존재들이다. 그럼 우리 지역의 현실은 어떨까. 경북의 2~30대 여성인구 비율은 9.2%에 불과하다. 15%를 넘는 서울은 고사하고, 17개의 광역시도 중에서 꼴찌만 간신히 면한 16위이다. 이쯤 되면 ‘소멸’이 이미 깊숙이 들어와 있는 것과 다름없다. 그래서 지방의 정책가라면 젊은 그녀들의 선택을 결코 허투루 볼 수 없다. 드라마 속에 투영된 그녀들의 취향마저도 다 되씹어 볼 만한 재료일 수밖에.



안타깝게도, 드라마에 나타난 주인공의 심리는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지독한 ‘서울 중심형’인 것이다. 갯마을의 경치와 편안함에 반해 잠시 정착한다. 하지만 그것은 잠시의 ‘힐링’을 위한 것일 뿐, 마음은 여전히 서울로 컴백할 날만을 고대하고 있다. 바다 경치가 아무리 아름답다 한들, 서울로 향하는 목마름을 해결할 방법은 없는 것이다. 숨 막히는 경쟁에 질려 잠시 떠났을 뿐, 그래도 영원히 떠날 수는 없는 서울이다. 이것이 서울과 지방도시 사이에 낀 그녀들의 솔직한 현실이다.



하지만 다행히 결말은 해피엔딩이었다. 바로 ‘만남’ 때문이었다. 갯마을에서의 만남이 서울로 향하는 발걸음도 결국 이겨낸 것이다. 이 ‘만남’도 우리는 상징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 ‘도시의 승리’의 저자인 글레이저 교수는 도시의 매력은 ‘만남의 기회’에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만남이야말로 고용이나 경제적 기회보다도 더 중요한 도시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만남은 친구나 연인과의 인연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우연과 필연 가운데 그 지역에서 엮이게 되는 모든 관계들을 말한다. 언제라도 누구와도 만나 새로운 꿈을 펼칠 가능성, 그것이 만남의 의미이다. 창조도시니, 포용도시니 하는 거창한 표현을 달지 않더라도 만남의 기회가 풍성한 도시라면 미래도 열려 있다. 만남은 친구, 연인만이 아니라 공동체와 도시문화를 만드는 힘이 되고, 더 나아가서 애플이나 구글과 같은 기술혁신의 씨앗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많은 지방도시들이 반대 측면만 보며 달리고 있는 건 아닐까. 혈연 지연의 껍질에 단단히 싸여 있어 누구도 들어가기 어려운 도시, 거대한 기반시설에만 공을 들이다가 시민의 삶은 공허해진 도시들이 그렇다. 재생과 활력을 논하면서도 도시를 도시되게 하는 근본적인 매력은 잃어가는 곳들이 적지 않다. 때로는 도시를 그랜드 플랜이 아닌 디테일에서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녀’들의 선택을 눈여겨보면서 도시의 근본적인 매력이 무엇인지 고민해보아야 할 때이다. 이것이 오늘날 갯마을의 처지에 놓인 지방도시들에 필요한 처방이 아닐까 한다. 김주일 한동대 공간환경 시스템 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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