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에는 양택과 음택이 있다. 주택이나 마을과 같이 산 사람이 거주하는 풍수가 양택이다. 죽은 사람이 거주하는 묘지 풍수는 음택이다.
사람의 태반을 묻는 태봉 혹은 태실은 분류하기는 곤란하나 음택 풍수에 넣는 사람도 있다. 왕족들은 태를 태우지 않고 항아리에 담아 명당에 안치했다.
그런 태를 담은 항아리를 석실에 모시기도 했는데 이를 태실이라 한다. 이런 태실은 집단적으로 모여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런 지역의 지명에는 태봉, 태실, 태장이란 단어가 들어간다. 그리고 이런 지역은 거의 완벽한 명당들이다. 남한 지역만 해도 이런 곳은 20개가 넘는다. 명당을 찾는 이유는 태를 좋은 땅에 묻어 좋은 기를 받으면 그 태의 주인이 무병장수한다는 일부 풍수이론가의 주장에 따른 것이다. 조선조 왕실에선 관상감에서 태를 묻는 장소를 물색하고, 안태사(安胎使)를 정하여 묻게 했다. 왕실의 태는 국운과 집접 관련이 있다고 여겨 소중하게 다룬 것이다. 관할구역의 관원은 봄·가을에 태실을 둘러보고 이상유무를 확인한 뒤 조정에 보고토록 했다.
태실을 고의로 훼손했을 때는 국법에 의해 엄벌함은 물론이다. 태봉에 불이 나서 군수를 좌천시킨 일(중종실록)이나 태봉관리를 소홀히 한 지방관을 잡아들이도록 한 일(선조실록)도 있었다. 안태(安胎)의 풍습은 왕실뿐 아니라 예로부터 민간에 전하는 보편적 의식이었다.
태는 생명의 근원인 까닭에 그 처리를 함부로 하지 않고 손액이 없는 방위와 장소를 가려 묻거나 태웠다. `성종실록’에 `범인(凡人)들은 반드시 가산(家山)에다 태를 묻는다’는 기록이 있어 이런 풍습을 반영한다.
최근 국가 사적인 충북 진천군의 김유신 장군 태실이 훼손됐다. 누군가 태실 봉분 속에 황동으로 만든 호랑이 상을 묻었다는 것이다. 호랑이 상을 묻은 것은 태반을 먹는 것을 상징한다. 주술치고는 고약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金鎬壽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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