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대통령이 살아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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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대통령이 살아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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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6.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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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족을 위해 핵개발을 추진한 지도자- 

 

이 영 복
(방송인)

 
 북한이 핵실험 공갈극을 벌이고 있다. 공갈극에서 끝날 것 같지 않다. 미국의 해외금융계좌 동결로 목줄을 잡힌 북한이 마지막 몸부림으로 핵칼을 꺼내들었기 때문에 소득없이 핵실험을 거둬들일 가능성은 적다.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하고 성공했다고 평가되면 일단 북한은 `핵보유국’ 이 된다. 물론 미국 등 서구 국가들은 이를 인정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지만 북한 핵무기는 실전상황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북한이 핵무기를 가지면 우리는 어떻게 되는가. 미국의 핵우산 아래  있다지만 우리 손에 핵이 없는 한 대한민국은 핵위협 속에서 헤어날 길이 없다. 한반도에서는 미국이 핵을 철수해간 상태다. 다시 들여오려 해도 친북 좌파세력들이 저항 할 것이 뻔하다. 소위 대북 `햇볕정책’을 내건 김대중-노무현 정권 9년만에 북한 핵무기라는 최대 위협에 휩싸였다.
우리도 개발하면 된다지만 이미 `핵포기’를 선언한지 오래다. 1980년대 북한이 남한과 `한반도 비핵화’에 합의한 것만 믿고 덜렁 손을 털어버렸다. 개발에 나선다해도 미국이 가만 있을리 없다. 미국은 사정거리 300km 이상 미사일 개발조차 가로 막고 있다. 남한 내 친북세력들이 자체 핵개발을 눈감고 있을리 없고, 참여정부가 용기를 낼 것 같지도 않다. 그래서 재임중 미국 몰래 핵무기를 개발하기 위해 밤잠을 설쳤고, 핵무기 개발 일보적전 시해당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아쉽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은 1975년 무렵 핵무기 개발을 공언했다. 주한 미군이 한국에서 핵을 거둬갈 경우를 전제로 한 선언이다. 1975년 6월 26일자 워싱턴 포스트 회견에서 “미국의 핵우산 보호를 받지 못하게 된다면 안전을 지키기 위해 핵무기 개발을 포함한 수단을 동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전 대통령은 또 1977년 5월 20일 청와대 출입 기자 간담회에서 “핵무기 만들 능력은 있다. 미국대표가 오면 핵을 가지고 갈 것인지 분명히 따지고 핵을 거둬간다면 핵무기를 개발하는 것을 막을 이유가 없다고 말하겠다”는 발언을 했다. 청와대 공보비서관으로 일했던 선우연은 “박 대통령이 1981년 전반기 핵폭탄이 완성된다”고 말하면서 그해 10월 1일 국군의 날에 원자탄을 세계 앞에 공개하고 그 자리에서 대통령 사퇴 성명을 내겠다는 것을 피력했다는 놀라운 사실을 공개했다. 박 전 대통령은 행동으로 옮겼다. 1976년 12월 1일 한국 핵연료 개발공단을 만들어 실험용 원자로를 통한 핵분열 물질의 생산에 관심을 기울였다. 원자탄 운반 수단인 미사일 개발에 착수, 1978년 8월 26일 중거리 유도탄(사정거리 1백 5Km)을 국방과학연구소팀이 개발, 시험에 성공했다. 미사일 발사 시험에 미국은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한다. 한국의 기술을 과소 평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거리 미사일 개발에 성공하자 미국은 한국 기술 수준에 놀라 핵무기 개발에 급제동을 걸었다는 것이다. 강대국들이 핵 패권을 행사해왔기 때문에 미국 역시 한국을 묵과하지 않았던 것이다.
1978년 출간된 미의회 국제기구 소위(프레이저 청문회)의 한-미관계 조사보고서는 “1970년대 초반 한국이 핵무기 개발 계획을 위해 몇 가지 조치들을 취했다는 표시가 있다. 한국정부는 프랑스로부터 핵연료 재처리 시설을, 벨기에로부터 합성산화 연료처리 시설의 구입을 논의하였다”고 지적했다. 박 전 대통령의 핵무기 개발 노력이 어떻게 좌절됐는지는 설이 분분하다. 프레이저 보고서는 “1975년경, 한국의 핵무기 계획은 취소되었고, 연료 재처리 시설 구매 협상은 종료된 것으로 나타났다”면서“1974년 외교적 노력(미국)이 한국 핵무기 생산에 대한 독자적인 조치를 봉쇄하는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당시 관계자들은 박 전 대통령이 미국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았다고 증언한다. 박 전 대통령은 1979년 1월3일 새해벽두, 선우연 청와대 공보비서를 부산으로 불러 “1981년 전반기 핵폭탄이 완성된다고 국방과학연구소장한테 보고 받았다”고 분명히 밝혔다고 선우 씨는 증언한다. 미국이 `한국의 핵개발 계획을 종료시켰다’고 주장한 한참 후까지 박 전 대통령은 강한 의지를 분명히 갖고 있었던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은 1979년 10·26때 김재규가 쏜 총에 의해 피살됐다. 그 순간 핵 강국을 추구했던 대한민국의 의지도 꺾였다. 박 전 대통령처럼 말없이 나라와 국민의 장래를 생각하는 지도자가 없다는 사실에 가슴이 답답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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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의 2006-10-10 15:13:11
시론 쓰신분 술이 덜깬듯한.... 얼릉 술깨슈 이양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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