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자원공사의 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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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자원공사의 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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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1.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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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리로는 다같은 `사과’이지만 한자로 써놓으면 그 내용은 싹 달라져 버린다. `沙果’는 경북의 특산품으로 한몫하는 과일이다. 그러나 `謝過’가 되면 사정은 영 달라져 버린다. 누구나 하기가 싫어지는 까닭이다. 사과를 하려면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며 똑같은 짓을 저지르지 않겠다고 고개를 숙여야 하니 행동으로 옮기기가  달가울리 없다.
 그 첫손꼽는 사례를 역사의 기록에서 볼 수 있다. `카노샤의 굴욕’이다. 교황과 황제가 힘겨루기를 벌이다가 일어난 사건으로 인류역사의 `100장면’에 포함된다. 1077년 새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가 성직 임명권을 국왕·영주로부터 회수한다고 공표했다. 그러자 독일왕이자 신성로마제국 황제인 하인리히 4세가 교황을 폐위했고, 교황은 다시 황제를 파문했다. 이로써 외톨이가 돼버린 황제는 카노사성에서 휴양 중인 교황을 찾아 한 겨울에 알프스까지 넘었으나 문전박대당하고 말았다. 결국 황제는 혹독한 추위 속에 맨발로 눈밭에 서서 사흘 밤낮을 눈물을 흘리며 용서를 간청한 끝에 겨우 파문을 벗어날 수 있었다.
 `구미 단수사태’를 빚은 한국수자원공사를 대표해 김건호 사장이 지난 주말 사과했다. 수도꼭지가 말라 닷새동안이나 50여만 주민들이 고통을 겪는데도 뻣뻣하기만 하던 목을 결국 굽힌 셈이다. 항구적 취수설비 대책이란 것도 내놨다. 이번 사과는 카노샤의 굴욕과는 성격이 다른 종류다. 좀더 일찍 고개를 숙였어야 했다.
 지금 구미지역에서는 집단소송 움직임이 모양새를 갖춰가고 있다. 그것도 여러 갈래로 추진되고 있다. 수자원공사가 이에  일일이 대응하려면 진이 빠지게 생겼다. 사태의 진전을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호미로 막을 일을 왜 가래로도 못 막을 만큼 판을 키웠는지 반성도 해야 한다. 하기야 “비난 받기 전에는 결코 변명이나 사과를 하지말라”고 했던 옛날 서양 국왕도 있기는 했다.  김용언 /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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