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초 한국에 건너온 `상아탑’은 다시 `우골탑(牛骨塔)’으로 진화했다. `가난한 농가에서 소를 팔아 마련한 자식들의 등록금으로 세운 건물이라는 뜻이다. 언제부터인가 국어사전에 표제어로 버젓이 올라 있고, 그래서 당연한 일이지만, 워드작업 중 이 낱말 뒤에 커즈를 놓고 F9 키를 치면 `牛骨塔’이 튀어나오는 것도 놀랄 일이 아니다.
이 낱말에는, 자식만은 대학 공부시켜 궂은일 않고 살도록 만들겠다는 한국어버이들의 한(恨)과 뼈아픈 희생이 상징적으로 집약돼 있다. 뿐만 아니라 거액의 등록금만 대학에 갖다 바치고 부모 기대에 부응치 못한 자식들의 자조(自嘲), 그리고 그런 사정을 바라보는 제삼자의 동정심 또는 빈정거림이 버무려져 있다.
반값등록금 문제로 시끄럽다. 앞 다투어 올려온 사립대 등록금이 연간 천만 원을 넘나드는 시대이니, 포퓰리즘에 맛들인 정치권이 반값등록금이란 인기아이템을 내버려둘 리 만무할 테다. 여야 모두가 반값등록금을 하겠다고 나서고, 기회를 놓칠세라 학생들이 촛불집회 따위로 정부와 정치권을 압박하고 있으니 모르긴 해도 아마 처음 나온 말대로 반값으로 결론이 날 공산이 크다. 하지만 그 재원은 대학이 축적해둔 적립금일 리 없다. 평균 1억 원이 훌쩍 넘는다는 교수와 여타 학교직원들의 봉급삭감으로 마련되는 것은 더더욱 아닐 거다.
해답은 국민의 세금뿐이다. 들리는 말로는 연간 3조 원 정도 있어야 반값등록금이 실현된다고 한다. 결국 그 돈만큼 세금을 더 내야 할 게다. 이제 국민 모두가 대학등록금을 분담해야 할 형편이니 상아탑은 우골탑을 넘어 `부골탑(父骨塔)’마저 뒤로하고 백성 민자를 `민골탑(民骨塔)’이 될 모양이다. 대학문턱도 못 밟아본 사람들이 옛 속담 `중 횟값 물어주듯’하는 상황이 벌어지려 하고 있다. 세금으로 등록금 깎아줄 궁리하는 나으리들, 돈 없어 중·고교도 제대로 못 다닌 서민들에겐 제 자식 공부시키느라 자식 같은 농우(農牛) 내다 파는 것만으로도 힘에 버거운 줄 알기나 한지 모르겠다. 정재모/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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