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닌 게 아니라 한 유명 작가가 말했듯 우선 그 자신이 `민족경제라는 탄광의 막장에서 쉼 없이 곡괭이질을 하다가’ 폐를 망쳐 생을 닫아간 산재(産災)노동자였다. 산재환자로서의 그의 이력을 짐작할만한 말 한마디가 있다. 10년 전, 2001년 9·11테러로 뉴욕 세계무역센터 건물이 무너져 내리던 그 순간 그 도시에 머물고 있을 때 문병 온 지인에게 했다는 말이다. “제철소 지으면서 마신 모래, 정치한다고 돌아다니면서 마신 먼지, 그게 다 그 물혹이었던 거요. 이제 그놈을 떼어 냈으니 홀가분하오.” 당시 그는 왼쪽 폐 밑에 생긴 3.2kg의 물혹 제거 수술을 받고 요양하던 중이었다.
`제철소 지으면서 마신 모래’는 포항 영일만의 모래 바람 속에서 세계 최대의 철강회사를 일군 40대 때의 이야기요, `정치한다고 돌아다닌’ 건 환갑의 나이, 1988년에 민정당 비례대표로 정치에 발을 담그면서 겪게 된 시련의 시절 이야기다. 한때 정치판의 이러저러한 사정에 휩싸여 평생을 바친 포철을 뒤로하고 유랑의 길에 올라 도쿄의 13평짜리아파트에서 신산(辛酸)한 세월을 보내기도 했지만 누가 뭐래도 그는 위대한 삶을 살았다.
그의 인생은, 미테랑 전 프랑스대통령 같은 세계적인 지도자로부터 `한국에 군대가 필요할 때 당신은 장교가 되었고 기업인을 기다릴 때 기업인이 되었으며, 미래비전이 요구될 때 당신은 정치를 했다’는 최상의 헌사(獻辭)를 얻을 만큼 그를 필요로 하는 국가· 시대에 이바지하는 삶의 연속이었다. 그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이 내일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에 안장된다. 온 나라 사람들이 최상의 언어로 그의 생애를 상찬하면서도 그 흔한 국가장(國家葬) 격식 하나 차리지 못하고 장송(葬送)하는 건 무슨 역설인가 모르겠다.
정재모/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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