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복 없는’ 입학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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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복 없는’ 입학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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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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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복 파동’을 바라보며- 
 
복거일 / (소설가)
 
 중·고등학교 학생들의 유명 브랜드 교복 가격이 지나치게 비싸다는 비난이 일고 있다. 이런 여론이 일자 정부는 교복업체의 가격 담합을 조사하고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교육인적자원부와 공정거래위원회가 나서더니, 마침내 국무총리까지 철저히 조사해서 정부 차원의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이번 `교복 파동’은 자체로는 작은 일이지만, 우리 사회의 문화적 풍토와 사회적 경향들을 흥미롭게 보여준다.
 먼저, 이번 일은 학교들에 대한 정부의 통제가 얼마나 지나친지 새삼 일깨워주었다. 교복을 입는 시기조차 학교 스스로 정하지 못하고 교육부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얘기다. 그렇게 철저하게 통제된 학교에서 어떻게 교사들이 주도적으로 교육을 하겠는가. 그렇게 정부 지시대로 움직이는 데 익숙한 교사들에게서 학생들이 무슨 창의성을 배우겠는가. 답답하다.
 다음, 제복을 선호하는 우리 사회 풍토가 그다지 바뀌지 않았음이 드러났다. 중고등학교는 학생들에게 규율을 가르치는 조직이므로, 학생들에게 교복이 어울리는 면도 있다. 교복은 여러 모로 편리하고 경제적일 것이다. 그래서 학생들과 학부모들과 바깥 사회가 교복을 선호하는 것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마음이 편치 않다. 모든  개인 판단을 존중하는 대신 전체적 합일을 추구하는 우리 사회 풍토를 여기서도 엿보기 때문이다. 사람이 자신의 개성을 다른 사람들에게 드러내는 길이므로, 옷차림은 자아의 한 부분이다. 그래서 학생들이 스스로 옷차림을 고르도록 하는 것은 교육의 중요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셋째, 유명 상표에 대한 반감이 교복의 경우 유난히 두드러지다는 점이 눈에 들어온다. 잘 알려진 상표들은 덜 알려진 상표들보다 값이 대략 곱절이라 한다. 제품 품질과 값이 다양하면, 소비자들에게 열린 선택의 폭이 늘어나고 소비자들은 이익을 본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값이 비싼 유명 상표들을 못마땅하게 여긴다. 그런 제품들을 파는 기업들은 매력적인 광고로 학생들의 판단을 흐리게 해서 폭리를 얻는다고 여긴다.
 광고 기능에 대한 무지에서 나온 편견이야 어느 사회에서나 널리 퍼진 현상이다. 이 경우엔 소비 주체가 학생들이라는 사정이 그런 편견을 증폭시켰다. 아울러, 부모 소득과 관련 없이 모두 똑같은 수준의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평등주의가 교복에 대해서도 작용하는 듯하다. 즉 여유 있는 집안의 아이들이라고 비싼 교복을 입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생각이다.
 이 문제에 대한 처방으로 나온 것들도 물론 시장 경제와 자유주의에 어긋나는 것들뿐이다. 두드러진 처방은 `공동 구매’인데, 그것은 이미 학생들이 반기지 않음이 드러났다. 소비자들인 학생들의 판단을 무시하는 사회주의적 처방을 대중 매체들이 한결같이 추천한다는 사실에서 우리 사회에 널리 퍼진 사회주의의 위세와 해독이 다시 드러난다.
 이처럼 이번 `교복 파동’의 뿌리는 시장에 대한, 특히 광고에 대한, 편견과 그릇된 평등주의의 결합이다. 그래서 이번 일은 사소하지만 전형적이다. 시장의 본질에 대한 무지가 시장에 대한 편견과 반감을 낳고, 그런 편견과 반감이 그릇된 평등주의와 결합하여 민중주의적 처방을 낳았다.
 넷째, 이런 종류의 일들에서 늘 그러하듯, 결국 이득을 본 것은 정부 관료들뿐이다. 관련된 시민들 모두가 - 학생들도 학부모들도 교사들도 - 혼란을 겪었고 정신적ㆍ시간적 손해를 보았다. 특히 학생들은 선택의 폭이 줄어들었고, 교복을 입지 못한 채 입학식을 치르게 되었다. 그러나 정부는 일거리가 늘어났고 그래서 예산과 기구를 늘릴 기회를 얻었다. 유명 상표를 지닌 기업들의 담합을 조사한다고 나선 공정거래위는 특히 큰 이득을 보았다. 이미 몇 해 전에 같은 사안에 대해서 조사를 했고 담합 혐의를 잡지 못했는데, 다시 나선 것이다. 그래서 이번 `교복 파동’의 계산서엔 정부의 몸집과 권한이 조금 커졌다는 항목과 시민들의 세금이 조금 늘어났다는 항목이 들어갈 것이다.
 학생들이 무슨 옷을 사서 입느냐 하는 것과 같은 문제들은 시장이 잘 푼다. 그런 일을 그릇된 평등주의의 관점에서 문제를 삼은 것이 이번 `교복 파동’의 실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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