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 올바르게 평가하려면 그 시대 틀로 바라봐야
두 얼굴의 영조
김백철 지음 l 태학사 l 504쪽 l 2만5000원
`탕평 군주’로 알려진 조선 영조는 붕당정치의 폐단을 혁파하고자 강력한 왕권을 휘두른 군주였다. 후임자인 정조의 시대를 앞서 닦은 개혁군주였으나 신료와 사족(士族)들에게는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무서운 왕이었다. 과연 그런 영조에게 `비민주적’, `전근대적’이라는 비판이 온당할까.
김백철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책임연구원의 연구서 `두 얼굴의 영조’(태학사)는 그런 평가가 올바르지 않다는 관점에서 쓰인 책이다. 영조와 탕평정치를 꾸준히 연구해 온 저자는 “전통시대는 왕정의 관점으로 바라봐야 하며, 현대는 민주공화정의 관점으로 접근해야 합리적이다”라는 기준을 제시한다.
“어느 한쪽을 비판하거나 미화하기 위해 수백년의 시간적 간극을 무시한 채 전혀 다른 역사적 맥락과 정치체제를 동일시하는 것은 실상과 괴리된 역사 인식에 불과하다”는 것이 저자의 문제의식이다. 이런 관점에서 그는 한편으로는 무소불위의 왕권을 행사했으나 동시에 애민(愛民)의 군주이기도 한 영조를 낱낱이 해부한다.
무려 52년이라는 긴 세월 왕위에 머무르다 보니 재위 후반의 영조는 여느 신하도 따라올 수 없는 정치적 `촉’을 소유했을 법하다. 문제는 그런 연륜이나 경험이 없는 신하들이 왕의 판단을 이해하기 어려웠다는 점이다.
`노왕은 어떤 사실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대신들과 전혀 달랐다. 오랜 경험으로 당장 객관적으로 문제없어 보이는 일조차 언젠가 화근이 될 것을 예감한 듯한 행보를 자주 보였다. 다수의 지지를 받을 수 있었다면 통찰력이나 혜안으로 평가됐을 것이나, 왕과 같은 경험이 없던 신료들은 합리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워했다.’(378~379쪽)
다행스럽게도 황혼기의 영조는 이렇게 확보한 군주의 위상을 이용해 백성을 어루만졌다. 하급 관리부터 시골 농민까지 다양한 계층으로부터 직접 정책 관련 의견을 청취했고, 언론을 통해 백성에게 자신의 의사를 적극 표현했다. 왕과 임금의 관계는 일방향에서 점차 상호작용으로 변화했다. 저자는 이런 영조의 면모를 `요순(堯舜)의 현신(現身)’이라 부른다.
영조는 현대 민주정치의 원칙으로 보자면 `견제받지 않는 권력’이었지만, 그처럼 강력한 권력으로 요순정치를 실현하고자 한 양면적 인물이었다. 저자는 이런 영조를 올바로 평가하려면 조선시대를 오늘날의 민주주의가 아니라 왕정이라는 그 시대의 틀로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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