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번의 대수술 받으며 시적인 삶을 살아온 성동혁 시인 첫 번째 시집
6
성동혁 지음 l 민음사 l 150쪽 l 9000원
[경북도민일보 = 이경관기자] “발가벗겨도 창피하지 않은 방에서/나의 지루한 등을 상상한다 사내들이 아이의 배를 때리는데 여전히 아이가 죽는다//(…)// 나의 구멍이 도넛 같다면 얼마나 달콤하게 죽을 수 있을까 헤드폰을 껴도 밀려오는 반투명의 소리들을 모른 척하고 달콤한 입체를 찾는다 긴 이름들이 비뚤어진다// 여섯 번째 일들이 오고 있다”(`6’ 중 일부)
다섯 번의 대수술을 받으며 시적인 삶을 살아온 성동혁 시인의 첫 번째 시집 `6’.
이 시집은 생사의 고통을 이기고 어렵게 만난 여리고 소중한 숨과 같다. 시집에는 총 67편의 시가 담겨있는데 `쌍둥이’와 `6’처럼 같은 제목을 가진 두 편의 시가 실려 있어 눈길을 끈다.
“거울을 보면. 숨이 차고/젖은 아스피린과 가 보지 않은 옥상이 보인다/오래 마주치기엔 서로 흐르고// 대신 나는 이가 투명해. 표정을 잃을 때마다 사라지는 다리/골반까지 반복되는 거울//(…)//스위치를 켜면. 물이 우르르 밝다/오늘이 짙고 밤이 숨차고/창문을 상상한다/방의 동공이 크다”(`그 방에선 물이 자란다’ 중 일부)
인간은 물속에서 오래 숨 쉴 수 없다. 마치 물속에 있는 듯 숨이 차고 끊어질 듯한 감각을 성 시인의 폐와 몸은 수시로 느낀다.
시 `그 방에선 물이 자란다’ 는 제목 그대로 방에서 물이 자라 모든 것들이 물기를 머금으면서 물에 가까운 존재가 되는 화자에 대해 이야기한다.
“아이들은 죽어서 그곳에 묻힌다// 아이들이 어깨를 맞대고 커져 간 움집을 파낸다 아이들은 죽어서 그곳에 묻히지만 나는 살아서 모종삽을 가지고 그곳으로 간다 아이들의 발톱에 모종삽이 닿을 때 나는 삽끝으로 아이들의 심장 소리를 듣는다 모종삽 모종삽 그곳을 파낸다 아이들의 발이 드러난다 발이 많다 그곳이 뛴다// 바람이 얇은 커튼을 제치며 낙원으로 노를 저어 간다 잎을 뚫고 팔분음표처럼 새들이 떨어지네 모자를 벗으면 어둠이 커지고 그들의 어머니는 영원한 자장가를 부른다 모종삽으로 솟은 발가락을 두드려도 평원은 하늘을 안고 움직인다 어른들은 주머니 안에서 양초를 켠다 환한 노래들이 밀려간다// 자 마지막으로 아이들에게 박수를 치자”(`반도네온’ 전문)
이 시에서 화자는 모종삽을 쥐고 죽은 아이들이 묻힌 집을 찾는다. 여기서 모종삽은 매장을 위한 것이 아니다. 모종삽에 닿은 아이들의 발은 움직여 다른 곳으로 달려간다.
시인에게 모종삽은 일종의 시 쓰기 도구다. 그에게 시는 어떤 죽음과 침묵이 살아 움직이는 시간이다.
“눈을 기다리고 있다// 서랍을 열고// 정말// 눈을 기다리고 있다// 내게도 미래가 주어진 것이라면// 그건 온전히 눈 때문일 것이다// 당신은 왜 내가 잠든 후에 잠드는가// 눈은 왜 내가 잠들어야 내리는 걸까// (…)// 나는 이 꽃을 선물하기 위해 살고 있다// 내가 나중에 아주 희박해진다면// 내가 나중에 아주 희미해진다면// 화병에 단 한 번 꽃을 꽂아둘 수 있다면”(`리시안셔스’ 중 일부)
`이 꽃을 선물하기 위해 살고 있다’는 화자의 말처럼 시인은 자신의 시를 통해 우리의 슬픔을 지워낸다. 그의 언어는 죽음에 대한 체험이 이뤄낸 투명한 성취다.
그는 사랑은 상처를 봉합하는 것이 아니라 상처를 더 찢어지게 해 존재론적 변이와 전환을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에게 시 쓰기는 찢어지는 사랑의 통각 속에서도 사랑을 지속하는 것, 즉 존재론적 투쟁이다. 그는 여섯 번째 몸으로 또 다시 세상을 그리고 시를 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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