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개혁 걸림돌은 관료? 아니 국회!
  • 한동윤
규제개혁 걸림돌은 관료? 아니 국회!
  • 한동윤
  • 승인 2015.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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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의원입법 1만2000건, 프랑스 6000건

▲ 한동윤 주필
[경북도민일보 = 한동윤] 우리나라의 기업규제가 과도하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세계경제포럼(WEF)에서 각국의 정부규제 부담(burden on government regulation)을 조사한 바에 의하면 한국은 154개국 중 96위로 그야말로 최하위권이다. 우리나라 기업은 외국기업과의 경쟁과 함께 내부의 규제장벽과 싸워야하는 이중고(二重苦)를 겪고 있다.
 과도한 규제는 투자 위축, 경쟁력 저하 등 경제 전체에 엄청난 기회비용(opportunity costs)을 요구한다. 경쟁력과 생산성을 높이는 데 써야 할 돈, 사람, 시간을 규제를 극복하는 데 써야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정치권과 관료사회의 부정 부패가 만연한 것도 과도한 규제 때문이다.
 규제의 주체는 행정부처다. 인·허가권을 틀어쥐고 기업의 활동을 막는다. 박근혜 대통령이 수없이 강조해온 ‘푸드 트럭’이 일선 행정부서의 반대로 아직까지 허용되지 않고 있는 게 대표적이다. 가정에서 만든 ‘명품 떡’이 택배(宅配) 금지 조항 때문에 소비자에게 직접 전달되지 못하는 것도 공무원들의 알량한 규제 탓이다. 박근혜 정부가 창조경제와 경제혁신의 이름으로 규제개혁을 강조하고 규제총량 축소, 규제비용 총량제 도입, 포지티브(원칙금지-예외허용)에서 네거티브(원칙허용-예외금지)로 규제방식 전환을 골자로 하는 개혁정책을 발표했지만 국민들은 그 효과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도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를 만들어 규제개혁 정책을 많이 발표했지만 별무효과였다. 규제개혁의 최대 장애는 공무원들이다.
 그러나 더 큰 장벽이 존재한다. ‘국회’다. 국회에서 규제 법령을 완화하거나 폐지해줘야 규제가 개혁되는 데 각종 규제개혁 정책이 국회에 가면 함흥차사다. 더구나 우리 국회에서 규제법령은 완화, 폐지되는 속도보다 신설, 강화되는 속도가 훨씬 빠르다. 한국 국회의 규제법령 생산량과 속도는 세계 1위 수준이다.
 제 18대 국회의 의안 발의 건수는 제17대 국회(2004~2008)보다 두 배 가량 증가한 1만3913건이다. 제19대 국회에서는 3년 만에 이 수치를 훌쩍 넘어 연일 신기록을 경신하는 중이다. 가결 건수 역시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더구나 여론의 주목을 끌기 위한 단기 인기 영합주의(myopic populism) 발상에서 비롯된 법안이 너무 많다.
 한국 국회의원의 법 만들기(입법)는 기네스북 수준이다. 최근 5년 동안(2007~12) 프랑스에서 의원 발의 법안 수는 6070개로 한국의 절반이다. 이 중 최종 가결된 법안은 오직 90개뿐이다. 일본은 2009~12년 기간 중 253건 발의에 92개를 가결하였다. 한국 국회의 입법 러시는 우리 국회의원들의 입법 의식이 프랑스의 두배이기 때문이 아니다.
 의원 입법은 자신의 의정활동을 알리는 데 최고의 수단이다. 시민단체가 의원입법의 수(數)로 의원들의 활동을 평가하면서 의원 입법이 쏟아지기 시작했고, 그러다 보니 의원입법의 질(質)보다 양(量)에 치중하는 경향이 생겼다. 특히 입법 내용에 따라 이득을 보는 집단은 그 법을 입안한 국회의원이 고마울 수밖에 없다. 그 법안 때문에 손해 보는 기업으로부터도 중점 관리대상으로 주목받게 된다. 의원 입법 때문에 여야 의원들이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관료와 정치인들은 ‘규제’가 많을수록 기업으로부터 관심을 많이 받을 수 있다. 인·허가권이 없는 관청에 어느 기업인이 드나들고, 관료들에게 어느 기업인이 고개를 숙이겠는가. 관료들이 규제개혁에는 곰처럼 느리지만 규제 신설에는 제비처럼 재빠른 이유도 뻔하다. 관료들의 규제 장벽을 민의(民意)에 따라 제거해줘야할 국회까지 온갖 입법으로 규제를 양산하면 기업과 기업인들은 숨이 막힐 수밖에 없다. 규제는 경제발전의 적(敵)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이 25일 “문형표 보건복지 장관의 해임안이 본회의에 상정되지 않으면 공무원연금 개혁안뿐만 아니라 법사위를 통과한 54개 법안의 본회의 처리도 상정해 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문 장관이 잘못된 통계 수치를 내세워 공무원연금 개혁 합의안을 깨는 데 기여했다는 게 그 이유다. 문 장관 해임은 해임이고 국회에 계류된 법안은 법안일 뿐이다. 전혀 관계없는 두 개의 사안을 묶어 입법 기능을 하지 않겠다는 것은 규제 중의 최대 규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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