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의 염원을 실은 유라시아 친선특급이 1만4400㎞의 대장정을 시작한다. 2002년 7월에 열렸던 한·러 친선특급 행사와 유사하다는 지적도 있지만 이번에는 러시아 외에 중국, 몽골, 중앙아시아, 유럽 등 이른바 ‘실크로드 익스프레스’(SRX) 구상의 주요 지역이 모두 망라돼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다르다.
지금은 남북한 철도가 끊겨 있지만 앞으로 한반도에 화해 무드가 조성돼 남북종단철도(TKR)가 건설되고, 그것이 유라시아 대륙의 철도와 연결되면 그 정치적, 경제적, 역사적 가치는 측량할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하다. 한민족 미래의 상당 부분은 이번유라시아 친선특급이 경유하는 지역들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통일 한국의 모습을 미리 체험해보는 이번 여정이 남북한 화해와 통일의 필요성을 다시 한번 일깨우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정·재계, 학계, 문화계 인사와 대학생 등으로 구성된 약 300명의 참가자는 14일 서울역에서 발대식을 가진 뒤 비행기 편으로 러시아의 극동 자유항인 블라디보스토크와 중국 베이징으로 이동한다고 한다. ‘북선’ 참가자들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독일 베를린까지 1만1900㎞, ‘남선’ 참가자들은 베이징에서 이르쿠츠크까지 2500㎞를 이동한다.
하바롭스크, 이르쿠츠크, 노보시비르스크, 예카테린부르크, 모스크바, 바르샤바, 울란바토르 등 기착지에서는 물류, 경제협력, 문화교류, 평화, 통일 등을 테마로 다양한 행사가 열리고 종착지인 베를린에서는 한반도 분단 70년과 독일통일 25주년을 기념한 베를린 장벽 행진, 통일기원 문화공연, 통일 대토론회 등이 예정돼 있다. 그런데 이번 행사 계획을 보면서 가장 아쉬움이 남는 부분은 열차의 출발지가 한반도가 아닌 중국과 러시아라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지난 대선에서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의 일환으로 부산에서 출발해 북한, 러시아, 중국, 중앙아시아, 유럽을 관통하는 SRX 구상을 제안했지만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SRX 구상은 시베리아횡단철도(TSR), 중국횡단철도(TCR)를 한반도의 TKR과 연결하자는 것이다. 현재 남북한을 잇는 3대 철도망(경의선, 경원선, 동해선)은 모두 군사분계선에 막혀 있는데 이것이 뚫리면 우리는 지금과는 차원이 다른 세계 물류의 중심지로 부상하게 된다.
유라시아 친선특급이 한반도가 아닌 블라디보스토크와 베이징에서 출발하는 것은 이런 아쉬움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우리 정부는 그동안 한반도 평화를 위해 끊임없이 화해의 손짓을 보내고 있지만 남북한 간 불신의 벽은 여전히 높은 것이 현실이다.
북한이 우리의 진의를 왜곡하고, 호응하지 않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그럼에도 독일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미래에 다가올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한다. 그래서 이 다음에 출발하는 유라시아 열차의 시발역은 부산이나 목포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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