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도민일보 = 김용언] “월급 150만원으로 시작하는 게 까마득하지만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퇴근 후와 주말에 온전히 가정을 위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저녁이 있는 삶이다.” 지난 13일 밤 서울대학교 학생 대상 온라인 커뮤니티 스누라이프에 ‘서울대생이 9급 공무원 될 썰’이라는 제목으로 올라온 글이다.
국립서울대를 졸업한 뒤 지방직 9급 공무원으로 임용될 예정이라는 이 학생의 글은 단박에 서울대생들은 물론 언론의 관심을 끌었다. ‘서울대’라는 간판보다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저녁이 있는 삶’”이라며 직업 안정성 때문에 공무원을 직업으로 선택했다고 당당히 밝힌 데 따른 반응이다.
이 글은 일주일 만에 1만2000건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하는 등 뜨거운 반향을 일으켰다. 또한 서울대생의 9급 공무원 취업을 두고 찬반 논쟁이 붙었다. 대체적인 반응은 이 학생의 선택을 이해하겠다는 것이다. 한 학생은 “취업난 탓에 직업 안정성이 계속해서 떨어지는 상황에서 삶 전체를 쉽게 관리할 수 있는 공무원이라는 선택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라며 “앞으로 이런 추세가 지속된다면 이러한 논쟁 자체가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학생은 “여자의 경우 서른 초중반 출산이란 장벽 때문에 퇴직 후 전업주부로 전향하는 경우가 많다”며 “출산 휴가가 확실한 공무원은 꽤 괜찮은 직업”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부정적인 반응도 있다. 한 학생은 “서울대 나와서 왜 그런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며 “예전의 도전 정신이 사라지는 것 같아 아쉽다”라고 생각을 밝혔다. “젊은 우리 청춘들이 창의적 자세보다 행복과 안전만을 추구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 한 것인지 생각해봐야 할 때”라고 덧붙였다.
서울대는 명문 중의 명문이다. 상위 2~3%에 들어야 갈 수 있는 곳이다. 어려서부터 반에서 1등을 놓치지 않아야 입학이 가능할 정도다. 그처럼 어렵게 들어간 서울대에 입학해서 4년 동안 수학하고 겨우 9급 공무원이라니…. 9급 공무원들이 들으면 분노할 소리지만 “서울대 나와서 왜 그런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상한 건 아니다. 더구나 지방직 9급 공무원은 중앙직 9급과도 다르다.
그러나 서울대생의 ‘지방직 9급’은 보기 나름이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퇴근 후와 주말에 온전히 가정을 위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이 학생의 주관은 존중받아야 한다. “퇴근 후와 주말에 온전히 가정을 위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저녁이 있는 삶”을 위해 “월급 150만원으로 시작하는 게 까마득하지만”이라는 현실까지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만약 이 학생이 도서관에서 밤 새워 공부해 행정고시나 사법고시 또는 외무고시에 붙었다 치자. 일정한 교육을 거쳐 판사나 검사, 5급 행정사무관이나 5급 외무사무관으로 임용되면 ‘월급 150만원으로 시작’할 일은 없게 된다. 그를 기다리는 것은 혹독한 경쟁과 야근, 혹사다. 이 학생이 꿈 꾸는 “퇴근 후와 주말에 온전히 가정을 위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저녁이 있는 삶”은 상당 부분 포기해야 한다.
이 학생은 아마도 지방 출신으로 보인다. 연고지의 지방행정기관이나 자치단체의 9급 공무원으로 직장생활을 시작하는 셈이다. 그 곳은 이 학생이 태어나 자란 친숙한 산천이 있을 것이다. 낳고 키워준 부모와 형제들도 있고, “퇴근 후와 주말에 온전히 가정을 위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저녁이 있는 삶”을 평생 함께 할 배우자가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이 학생은 머잖아 ‘저녁있는 삶’을 위해 고향으로 내려갈 것이다. 그가 조촐하지만 저녁이 있는 삶을 즐기고 있을 때 고시방에 틀어 박혀 고시공부에 밤을 새우거나, 현대차나 삼성에 입사하기 위해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쓰는 그의 동료 서울대생들이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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