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있는 삶’ 위해 지방직 9급 선택한 서울대생
  • 김용언
‘저녁 있는 삶’ 위해 지방직 9급 선택한 서울대생
  • 김용언
  • 승인 2015.10.2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경북도민일보 = 김용언]  “월급 150만원으로 시작하는 게 까마득하지만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퇴근 후와 주말에 온전히 가정을 위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저녁이 있는 삶이다.” 지난 13일 밤 서울대학교 학생 대상 온라인 커뮤니티 스누라이프에 ‘서울대생이 9급 공무원 될 썰’이라는 제목으로 올라온 글이다.
 국립서울대를 졸업한 뒤 지방직 9급 공무원으로 임용될 예정이라는 이 학생의 글은 단박에 서울대생들은 물론 언론의 관심을 끌었다. ‘서울대’라는 간판보다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저녁이 있는 삶’”이라며 직업 안정성 때문에 공무원을 직업으로 선택했다고 당당히 밝힌 데 따른 반응이다.
 이 글은 일주일 만에 1만2000건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하는 등 뜨거운 반향을 일으켰다. 또한 서울대생의 9급 공무원 취업을 두고 찬반 논쟁이 붙었다. 대체적인 반응은 이 학생의 선택을 이해하겠다는 것이다. 한 학생은 “취업난 탓에 직업 안정성이 계속해서 떨어지는 상황에서 삶 전체를 쉽게 관리할 수 있는 공무원이라는 선택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라며 “앞으로 이런 추세가 지속된다면 이러한 논쟁 자체가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학생은 “여자의 경우 서른 초중반 출산이란 장벽 때문에 퇴직 후 전업주부로 전향하는 경우가 많다”며 “출산 휴가가 확실한 공무원은 꽤 괜찮은 직업”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부정적인 반응도 있다. 한 학생은 “서울대 나와서 왜 그런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며 “예전의 도전 정신이 사라지는 것 같아 아쉽다”라고 생각을 밝혔다. “젊은 우리 청춘들이 창의적 자세보다 행복과 안전만을 추구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 한 것인지 생각해봐야 할 때”라고 덧붙였다.
 서울대는 명문 중의 명문이다. 상위 2~3%에 들어야 갈 수 있는 곳이다. 어려서부터 반에서 1등을 놓치지 않아야 입학이 가능할 정도다. 그처럼 어렵게 들어간 서울대에 입학해서 4년 동안 수학하고 겨우 9급 공무원이라니…. 9급 공무원들이 들으면 분노할 소리지만 “서울대 나와서 왜 그런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상한 건 아니다. 더구나 지방직 9급 공무원은 중앙직 9급과도 다르다.

 서울대를 졸업하는 훌륭한 재목(材木)이 지방직 9급을 선택했다는 현실을 안타깝게 여기는 의견이 적지 않을 것이다. 오죽 취업난이 심하면 최고 엘리트가 지방직 9급에 만족해야 할까 하는 동정이다. 취업난 속 명문대 여부와 상관없이 일자리를 찾기 힘들어지면서 ‘지방직 9급’에 만족해야 하는 상황이 왔다는 푸념이다.
 그러나 서울대생의 ‘지방직 9급’은 보기 나름이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퇴근 후와 주말에 온전히 가정을 위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이 학생의 주관은 존중받아야 한다. “퇴근 후와 주말에 온전히 가정을 위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저녁이 있는 삶”을 위해 “월급 150만원으로 시작하는 게 까마득하지만”이라는 현실까지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만약 이 학생이 도서관에서 밤 새워 공부해 행정고시나 사법고시 또는 외무고시에 붙었다 치자. 일정한 교육을 거쳐 판사나 검사, 5급 행정사무관이나 5급 외무사무관으로 임용되면 ‘월급 150만원으로 시작’할 일은 없게 된다. 그를 기다리는 것은 혹독한 경쟁과 야근, 혹사다. 이 학생이 꿈 꾸는 “퇴근 후와 주말에 온전히 가정을 위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저녁이 있는 삶”은 상당 부분 포기해야 한다.
 이 학생은 아마도 지방 출신으로 보인다. 연고지의 지방행정기관이나 자치단체의 9급 공무원으로 직장생활을 시작하는 셈이다. 그 곳은 이 학생이 태어나 자란 친숙한 산천이 있을 것이다. 낳고 키워준 부모와 형제들도 있고, “퇴근 후와 주말에 온전히 가정을 위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저녁이 있는 삶”을 평생 함께 할 배우자가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이 학생은 머잖아 ‘저녁있는 삶’을 위해 고향으로 내려갈 것이다. 그가 조촐하지만 저녁이 있는 삶을 즐기고 있을 때 고시방에 틀어 박혀 고시공부에 밤을 새우거나, 현대차나 삼성에 입사하기 위해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쓰는 그의 동료 서울대생들이 있을지 모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기사
  • 경북 포항시 남구 중앙로 66-1번지 경북도민일보
  • 대표전화 : 054-283-8100
  • 팩스 : 054-283-5335
  • 청소년보호책임자 : 모용복 국장
  • 법인명 : 경북도민일보(주)
  • 제호 : 경북도민일보
  • 등록번호 : 경북 가 00003
  • 인터넷 등록번호 : 경북 아 00716
  • 등록일 : 2004-03-24
  • 발행일 : 2004-03-30
  • 발행인 : 박세환
  • 대표이사 : 김찬수
  • 경북도민일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북도민일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HiDominNews@hidomin.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