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도민일보] 가가와현은 일본 본토 4개의 섬 중 가장 작은 섬인 시코쿠(四國)에 속한 현이다. 시코쿠는 시코쿠 순례 88길로 유명한 곳이다. 1200년간 이어져 온 불교 성지 순례길이다.
시코쿠에서 태어나 시코쿠에서 깨달음을 얻은 홍법대사(774년~835년)의 발걸음을 좇는 순례다. 1번에서 88번까지 번호를 붙인 시코쿠현내에 있는 절을 순서대로 걷는 1200㎞의 장거리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이 길을 소개하는 책, 이를테면 ‘시간도 쉬어 가는 길, 시코쿠를 걷다’(최성현 저, 조화로운삶 간)와 같은 여행책자가 발간되면서 꽤 많은 도보여행자들이 찾는다고 들었다. 가가와현에도 몇 개의 순례코스가 있었고, 두어 군데의 절을 방문하면서 순례길을 걷는 흰옷 입은 순례자를 만나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가와의 옛 지명 ‘사누키’ 하면 떠오르는 것은 ‘사누키 우동’이다. 가가와는 일본 3대 우동으로 꼽힐 정도로 유명한 우동의 본고장이다. 이 우동은 무라카미 하루끼의 ‘하루키의 여행법’을 통해 일본인들에게 널리 알려졌고 우리나라에서도 미식가들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사누끼 우동에 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며 최근에는 우동학교에 우동을 배우러 가는 사람들도 있다고 했다.
2년전 가을 일본 가가와현을 간 적이 있었다. 내가 가가와를 찾은 것은 순례길을 간 것도, 가가와 우동을 먹으러 간 것도 아니었다. 포항과 가가와는 특별한 관계를 갖고 있다.
1900년대 초, 많은 일본인 어부들이 포항 구룡포로 이주했는데 그 어부들이 대부분 가가와현 출신이었다. 이러한 배경으로 2010년 1월 포항시가 가가와현 민단과 의원들을 초청하면서 교류가 시작되었고, 포항국제불빛축제에 가가와현 민단 일행이 참석하는 등의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 즈음 가가와현 간온지시의 민단 관계자들이 축제위원회 일행을 그들의 축제에 초청하여 방문하게 된 거였다. 가가와는 바다에 면해 있기는 하지만 매우 조용한 농촌마을의 인상이었다. 주로 농사를 짓고 있는 마을사람들은 전통적인 풍습과 문화를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의 여느 농촌과 비슷했다.
그런데 그들의 마을축제가 보통이 아니었다. 풍농기원의 전형적인 농경문화의 잔재가 마쯔리로 전승되고 있었다. 일본의 전통적인 축제인 장식가마축제를 거의 원형 그대로 유지하면서 전 지역민들의 참여와 열정으로 야단스럽게 축제를 준비하고 자랑스럽게 축제를 즐기고 있었다. 한껏 멋진 장식을 한 마을단위의 가마수레를 마을 사람들이 메고 발을 맞추어 걷고 흔들면서 위세를 뽐낸다.
집집마다 참여 인원이 할당되어서 젊은이가 없으면 늙은이라도, 어른이 없으면 어린아이라도 참여해야만 하는 마을 규약도 있다고 했다. 그런 규약과 상관없이 마을축제에 참여하지 못하는 집안은 그것을 수치로 안다고도 했다. 하여튼 그들은 그날의 축제를 위해 1년을 준비하고 애썼으며, 충분히 즐기고 있었다.
그들이 스스로 만들어 즐기는 축제에 전국 각지에서 관광객들이 몰려들어 더할 나위 없이 한바탕 질펀한 잔치장이었다. 요즈음은 외국에서도 심심찮게 관광객들이 온다면 안내하는 이는 자랑이었다. 그야말로 축제의 전형이었다.
최근 몇 년간, 가을이 되면 청송사과축제를 빠짐없이 갔었다. 우리나라 최고의 사과를 생산하는 청송의 대표적인 축제행사인데, 이 축제에서 일본의 마쯔리와 같은 퍼레이드를 보게 되어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청송군 내 8개 읍면 단위로 사과도깨비를 만들어 퍼레이드를 벌이고 행사장에서 한바탕 춤을 추며 관광객과 함께 어울려 즐기는 형태는 가가와의 마쯔리와 거의 흡사했다. 퍼레이드에 참여하는 사람들도 남녀노소 가림이 없었는데 앞장선 농악대나 뒤따르는 가면쓴 도깨비들이 할아버지, 할머니, 학생, 청년, 여성 남성, 어린이까지 다양했다.
그들이 전문공연단이 아니었기에 간혹 있는 실수나 찢어진 가면은 더 큰 재미였다. 저절로 지펴오른 신명은 도열한 관광객들의 어깨도 들썩이게 했고, 흥에 겨운 관광객들과 함께 질펀하게 한바탕 벌인 춤판은 더욱 신명났다. 바로 이것이다 싶었다. 전국적으로 많은 축제의 폐해에 대한 지적과 비판이 많지만 이 청송사과축제에서 청송군민들이 만들어낸 축제콘텐츠와 같은 축제라면 아무리 많은들 대수랴 싶었다.
볼 것도 즐길 것도 없는 축제, 자치단체장의 홍보성 축제, 가수들이나 불러 관객 동원하는 그저 그렇고 그런 축제가 식상하다면 청송사과축제장에서 지역민들이 만든 멋진 축제를 꼭 즐기라고 권하고 싶다. 올해도 어김없이 진행된 사과도깨비퍼레이드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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