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 나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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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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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명래 수필가
[경북도민일보] 며칠간을 고민하던 아내는 마침내 결심하였다. 전장에 나서는 병사나, 대입수능 고사장에 들어서는 수험생들이 결의를 다지는 것처럼 단호하고 결연했다. 아이들을 시집보내고 장가보낼 때도 그런 적이 있었는가 싶을 만큼이다. 인생살이 육십 년에 처음인 이 중대 결심은 바로 직접 김장을 하는 일이었다.
 우리 집 밥상에는 일 년 내내 김치가 오르는 편이다. 특별한 반찬이 없어도 김치만 있으면 그만이라 생각하면서 수저를 든다. 아내는 열무김치, 나박김치를 비롯하여 제때 나는 재료를 가지고 각종 김치를 담근다. 횟수를 거듭할수록 솜씨도 일취월장하여 맛이 아주 그만이다. 친구들과 나눠먹기도 하고, 가끔은 시집간 딸에게 보내주면서 칭찬도 듣고 자부심도 가진다. 그러나 그렇게 먹으면서 김장을 하겠다고는 하지 않았는데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이제는 직접 김장을 할 때가 되었다고 판단했거나 회갑을 넘긴 나이가 대한민국 아줌마의 당당한 용기로 작용했음이 틀림없다.
 아내는 가장 먼저 인터넷 서핑으로 김장에 들어가는 재료를 파악하고 순서를 확인하였다. 그런 기초에다 평생의 경험과 귀동냥으로 축적된 내용을 추가하는 등 자신만의 노하우를 접목시킨다. 우리 가족이 먹을 분량에다 주변에 나눠줄 것까지 합하여 배추는 몇 포기, 마늘과 생강은 얼마, 젓갈을 비롯하여 김치의 맛을 내는 각각의 재료를 결정하고 양을 산출하였다.
 준비과정에서 보조를 맡은 나의 역할도 만만찮았다. 아내의 지시가 떨어지기 바쁘게 즉시 미리 사두었던 고추를 꺼내와 꼭지를 따거나, 마늘을 까는 일을 즐겁게 행한다. 둘이서 살고 있으니 뭣이든지 너 아니면 내가 해야 한다.
 만반의 준비가 끝난 디데이의 아침이었다. 지업사에 가서 식탁 위에 펴놓을 비닐을 사오는 일만 해주고 자리를 비켜달라는 것이 아내의 마지막 지시였다. 가까운 곳에 살고 있는 친구가 김장을 돕기 위하여 올 시간이 되었다는 것이었다. 올해 우리 집 김장이 그렇게 탄생되었다.
 다음 날이 일요일이었다. 한 포기씩 따로 담아둔 김치통을 차에 싣고는 혼자 살고 있는 친정언니와 옛 직장동료에게 전하는 것으로 김장하기의 대미가 장식되었다. 그간 얻어먹었던 김장김치에 대한 신세를 일부나마 갚는 일이기도 했다. 아내는 돌아오는 차안에서 어깨를 두드리며 마음이 푸근하다는 말을 연신하였다. 창고에 겨울을 날 준비로 연탄을 가득 들여놓은 후 손을 털며 마음이 푸근했었던 옛 기억을 떠올리며 웃었다.
 김치에는 비타민과 섬유소, 유산균이 많아 피부염이나 비만에도 특효가 있다고 한다. 일부 외신에 ‘세계 50대 건강식품’으로 뽑혔다는 말도 들었다. 2년 전 유네스코에서는 김치가 아닌 우리의 김장문화가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널리 세계에 인정받았음이 자랑스럽다. 생각해 보면 함께하고 나누는 것은 김장이 아니라 마음이다. 그래서 따뜻한 마음이 오가는 우리의 겨울이 추운 것만은 아니다.
 오늘 아내는 또 하나의 숙제를 만들었다. 내년에는 미국에 살고 있는 며느리에게 자신의 김장비법을 전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이것이 성취된다면 그야말로 김장의 세계화에도 기여하게 되는 것이다. 함께하고 나눠먹는 우리의 김장과 김장문화, 그리고 그런 마음이 미국 사회에도 뿌리내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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