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도민일보 = 김용언] 우선 민태원의 ‘청춘예찬’에서 몇 대목 옮겨 적는다. “이성은 투명하되 얼음과 같으며, 지혜는 날카로우나 갑 속에 든 칼이다. 청춘의 끓는 피가 아니더라면, 인간이 얼마나 쓸쓸하랴? 얼음에 싸인 만물은 죽음이 있을 뿐이다. 그들에게 생명을 넣는 것은 따뜻한 봄바람이다. 풀밭에 속잎 나고, …<이하 생략>.
이토록 찬란하고 아름답게 예찬한 ‘청춘’은 과연 무엇인가? ‘신체적 정신적으로 한창 성장하거나 무르익은 시기에 있는 사람’. 국립국어원이 펴낸 표준국어대사전의 뜻풀이다. 내친김에 ‘청춘기’를 본다. ‘한창 젊고 건강하여 활발하게 활동하는 시기’라고 했다. 다른 국어사전들도 엇비슷하다. 하기야 크게 다를 이유도 없다.
굳이 말장난을 하면 ‘고무줄 연대’쯤 된다. 예컨대 연합뉴스 보도를 보면 전남 곡성군의 조례는 19~49세다. “65세 이상 인구가 30%를 넘는 상황에서 20~30대만으로 청년을 규정하면 대상자가 거의 없는 것을 고려했다”는 게 관계자의 설명이란다. 경북도는 15세~39세로 10년을 더 늘려놨다. 의학기술의 발달이 100세 시대를 몰아오고 있다. 현재 65세 이상 ‘경로’도 언젠가는 10년쯤은 올려야 될 시기가 오게 될 게다. 40대 청년, 50대 청년이 수두룩한 세상에 10여세 더 많다고 ‘노인’이라니 아귀가 맞질 않는다. 고민 많이 하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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