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도민일보 = 정재모] ‘… 간송(澗松)은 어느 여름날 한남서림에 들러 잠시 더위를 식히고 있었다. 그때 책 거간으로 이름난 사람이 바삐 가게 앞을 지나갔다. 간송이 필유곡절이란 생각이 들어 주변에 그 사연을 알아보도록 했다. “지금 경상도 안동에서 훈민정음 원본이 출현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걸 구입해오기 위해 돈을 구하러 가는 길이랍니다.” 얼마냐는 간송의 물음에 1천원이란 대답이 돌아왔고 간송은 1만1천원을 선뜻 내주면서 “1천원은 수고비요”라고 했다.’(훈민정음해례본, 교학사)
1446년 간행된 이래 자취를 감췄던 훈민정음 해례본 원본이 무려 494년만인 1940년 경상도 안동의 한 민가에서 실체를 드러내게 된 경위의 한토막이다. 해례본의 가치를 당장 알아차린 간송 전형필(全鎣弼)이 대뜸 거간꾼이 부르는 값의 11배를 내놓는 장면을 그려보면 감동스럽기까지 하다. 당시 1000원은 서울의 기와집 한 채 값이었다고 한다. 이렇듯 지금 우리가 유일본으로 갖고 있는 훈민정음 해례본 원본은 안동이 500년 세월 동안 지켜내 20세기에 햇빛을 보게 한 보물이다.
훈민정음 해례본 목판을 복각(復刻)하고 그로써 책을 만드는 일을 보면서 어쩔 수 없이 아쉬워지는 모퉁이가 있다. 훈민정음 간송본은 표지와 처음 두 장(4쪽)이 찢어져나간 훼손본이다. 그 표지와 떨어져나간 두 장을 누군가가 복원한 것이다. 그런데 지난 2008년 상주에서 또 다른 원본 한 권이 발견됐다는 뉴스가 세상을 놀라게 했다. 하지만 이 책은 아직 햇볕 아래로 나오지 않고 있다. 소유권 분쟁에 이어 보관자가 오기와 고집으로 내놓지 않는 거다. 하루 빨리 이 원본도 찾는 일이 다시금 절실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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