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도민일보 = 정재모] 경북 의성은 먼 옛날 한 부족국가였다. 교과서 이외의 여러 역사책에서는 엄연히 다루는 조문국(召文國)이다. 삼한시대 초기의 한 국가라고 한다. 지금도 큰 무덤 같은 왕국의 흔적들이 지역에 더러 남아 있다. 군내 금성면 탑리 일원의 대형 고분군, 금동관 같은 것들이다. 2~3세기경 신라에 복속된 것으로 학계에서는 본다. 삼한시대에 여러 부족국가들이 있었을 것임에도 그시절의 편린이 전하는 건 오직 조문국인지라 제법 융성했던 국가 조직이었을 걸로 보는 견해가 많다.
조문국은 뒤에 문소군(聞韶郡)이란 지역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지금과 같은 의성(義城)이란 이름을 얻은 것은 고려 초기다. 통일신라 말 후백제 견훤이 지금의 의성지역을 쳤을 때 태수가 흥술장군이었다. 그는 이 전투에서 죽었다. 태조 왕건은 건국초기 흥술 장군이 자신에게 귀부(歸附)하여 성을 지키다가 전사한 그 의리를 가상히 여겼다. 그래서 문소군을 부(府)로 승격시키면서 의성으로 개명했다고 한다. ‘의리의 성’이란 뜻이다. 의성 사람들은 지명처럼 의리를 중시한다고 한다. 지역사에 대한 긍지도 크다.
사진으로 보는 의성 숭의문은 우리나라 곳곳에 있는 성문들의 위용에 비해 손색이 없어 보인다. 군이 내심 바라고 있는 관광의성의 명물로 부상하여 기대에 부응하는 ‘의리의 문’이 될 것인지 주목된다. 군은 성문 공원화사업을 펼쳐 구봉산 문소루 등과 연계하여 관광자원화는 물론 주민들에게 휴식공간도 제공하겠다는 복안이다. 주민들이 양팔을 벌려 환영할 일일 거다. 한데, 전선줄이 어지럽게 얽힌 성문 앞의 전주 이설도 공원사업의 한 과제로 추진되고 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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