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어야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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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어야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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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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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살로메 작가

[경북도민일보]  누가 더 효자일까. 한 집에 살면서 부모랑 아웅다웅하는 자식과 멀리 있으면서 자주 안부를 묻고 용돈 주는 자식. 답을 해야만 한다면 둘 다 효자이다. 가까이 있는 부모를 누구나 다 모실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멀리 있어 모시지 못하는 마음을 누구나 용돈으로 보상해 드릴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고자 한 것은 효자 논쟁이 아니다. 방점을 찍는 곳은 ‘가까이 모시면서 서로 아웅다웅하는’ 부분이다. 아무리 좋은 관계라도 물리적 거리가 가까우면 크든 작든 심리적 갈등이 생기기 마련이다. 부모 자식 간의 이야기가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의 기본 양상이다.
 인간은 페르소나의 동물이다. 자기 보호용이든 체면용이든 가면을 쓰게 되어 있다. 안 그런 척 교양 있는 척 해도 한 줌 욕망덩어리로 치환될 수 있는 게 사람이다. 누구나 자신이 먼저다. 태생이 자기 본위이다. 따라서 누군가를 위한다고 말할 때 그 누구는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 상대를 위한 것일까. 나를 위한 것일까. 적어도 상대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엄격하게 보면 누구를 위한다는 자발적인 선택은 결국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을 위한 것이다. 사명감이든 호의든 자기만족이든 결국 자신이 좋아서 남을 위한 행동을 한다. 이타심도 결국은 이기심이 그 출발이다. 자신 없는 타자란 있을 수 없다.
 타자보다 자신이 먼저인 인간은 그만큼 상처 받기 쉬운 존재이다. 스스로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참았던 자존심이 상처 받았다고 생각할 때 관계는 삐걱거릴 수밖에 없다. 욕망은 감춰질수록 좋고 자존심도 지켜질수록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가까운 사이일수록 그게 어렵다. 서로가 너무 잘 알기에 송곳이 주머니를 뚫듯 서로에게 생채기를 낸다. 욕망을 내리고 자존심을 버리면 되지 않느냐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이론에서나 가능하다. 신이 아닌 인간은 딱 그만큼의 약점을 지닌 존재이니까.

 너무 자주 보면 너무 많은 약점을 본다는 것과 같다. 따라서 사람 사이에는 인간적인 약점을 인정해주기 위한 거리가 필요하다. 심리적인 안정은 물리적인 거리로부터 비롯된다고나 할까. 이웃사촌이 먼 친척보다 낫다는 말은 긍정적 정서로 보면 맞는 말이다. 하지만 관계의 속성을 파고들면 얘기가 달라진다. 이웃사촌은 옳은 말이지만 먼 친척은 더욱 옳은 말이다. 멀리 있는 사람이 가까이 사는 사람보다 인품이나 덕성이 뛰어나서가 아니다. 거리감이 확보되었다는 요건 하나만으로도 심리적 안정을 얻을 수 있다는 뜻이 된다. 매일 만나면 욕 나오고 가끔 만나면 돈 나온다. 자고로 가까우면 상처요 멀면 웃음이다.
 왜 우리는 관계에 목말라하고 너무 가까워진 관계 때문에 힘들어할까. 결핍이 그 출발점이다. 결핍은 환상을 부르고 환상은 집착을 낳는다. 집착의 단계, 이 지점이 관계의 중요한 갈림길이다. 현명한 자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그렇지 못한 자는 밀착의 관계망 속으로 스스로를 밀어 넣는다. 가까운 사람끼리의 가까워지려는 마음은 결코 허물없음으로만 수렴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 서로에게 불편함이 되고 필연적인 오해를 낳게도 된다. 너무 가깝기 때문에 자꾸 멀어지게 되어 있다. 그러니 억지로 가까이 하려말고 너무 가까이 두려말자.  
 억지 이타심은 비애 섞인 공멸을 낳고, 현명한 이기심은 명랑한 이타심을 낳는다. 잘 지내고 싶으면 적당히 멀어져라. 오래 가고 싶으면 눈치껏 떨어져라. 자주 본다고 깊어지지도 멀리 있다고 얕아지지도 않는 게 관계이더라. 곳간에서 정 난다는 말도 물리적 거리가 확보되었을 때 더 발휘된다. 관계의 지속은 지근한 거리가 아니라 상호 신뢰에 달려 있다. 파국 없는 관계는 담박한 거리만큼의 자리에 있다. 가족애든 애정이든 우정이든 다 해당되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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