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재무상태표'를 점검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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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재무상태표'를 점검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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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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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앞마당에 어디에서 왔는지 정체를 알 수 없는 민들레가 여기저기에 피었다. 1층 공부방에 좌정하니, 능수 벚나무 옆에 노란색 민들레가 눈에 들어온다.

자연은 언제나 인위적인 좌정보다 훨씬 감동적인 인생의 깨달음을 선사한다. 자신에게 유일무이한 임무를 묵묵하게 행하는 자연은, 자신을 남들과 비교하지 않는다.

예수는 저 하늘을 질주하는 이름 모를 새나, 들에 핀 백합화가 솔로몬이 지은 예루살렘보다 위대하다고 감탄했다. 나는 좌정을 중단하고 마당으로 나가 풀밭에 쪼그려 앉았다. 생명을 노래하고 있는 민들레를 가만히 봤다.

자세히 보면 볼수록 자신의 비밀을 알려준다. 그 비밀이란 수학으로도 이해할 수 없는 민들레의 정교한 구조다. 오른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으로 왼쪽으로 약간 기울어진 민들레꽃 세 송이가 나를 묵상의 세계로 인도한다.

이들 중, 가운데 우뚝 선 민들레는 완벽하게 변신했다. 그것은 더이상 노란 꽃들을 머금은 민들레가 아니다. 자신을 하얀 관모로 변신시켰다. 누가 자연이 서서히 변한다고 말했던가! 자연은 급변한다. 어제까지 볼 수 없었던 이 하얀 ‘우주선’은 어디에서 나왔는가? 노란 민들레가 하얀 관모를 쓴 우주선으로 천지개벽했다.

양옆에 핀 작은 민들레는 아직도 겸연쩍게 머리 위에 200개 이상의 꽃들을 비행접시와 같은 받침에 이고 근근이 버티고 있다. 나는 마당 한가운데 서서 늠름하게 벚꽃을 자랑하던 벚나무에 한눈을 팔았다. 이 나무의 수분에 정신이 팔려 그 아래 겸연쩍게 피어오른 풀뿌리 민들레의 수분엔 관심이 없었다.

신이 보낸 전령인 벌들은 식물을 차별하지 않는다. 벌들은 내가 모르는 사이에, 윙윙거리며 바쁜 걸음으로 이 낮은 민들레에 하강해, 수분을 통해, 변화를 일으켰다. 민들레 꽃잎 하나하나가 이젠 씨앗을 머금은 프로펠러가 됐다. 조그만 바람에도 보금자리를 박차고 하늘로 치고 올라갈 채비를 한다. 하늘로 날아오르기 위해, 가장 최적화된 모습으로 변신한 것이다.

앞마당에서 내내 푸대접을 받아왔던 한 민들레 씨가 비행을 준비하며 말한다. “이 마당에는 재미있는 것이 하나도 없어. 저 하늘 위로 날고 싶어.” 그러자 이들의 씨를 머금고 있는 민들레 씨방이 씨들에게 말한다.

“날아가서 뭐하게? 너희들은 그래 봤자 잡초야. 저 하늘로 날아가서 운이 좋게 양지바른 풀밭에 떨어져도, 너는 장미나 철쭉이 될 수 없어. 땅에 붙은 난쟁이 같은 우리를 누가 좋아해. 인간들은 우리를 잡아 뽑고 밟고 혹은 무시무시한 제초기로 잘라 버리지. 차라리 운이 좋게 살아남은 이 장소가 천국이야. 네가 하늘로 올라가 어디로 간다고 해도, 너의 미래가 걱정스럽다.”

내 눈앞에 나타난 민들레도 어디에선가 날아온 씨가 만들어낸 신비다. 민들레 씨가 바람결에 날 수 있는 이유는, 바람을 타고 멀리까지 날아갈 수 있는 최적화된 모양으로 진화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민들레 씨는 꽃 주위 2m 안에 흩어지지만, 적당한 바람이 불면 5~6㎞ 이상을 날아가기도 한다. 자신의 생존력을 높이기 위해 민들레 씨는 오랜 기간의 다양한 시도를 통해 자연에서 가장 능숙하게 나를 수 있는 구조로 진화했다.

민들레 씨는 바람이 불면 씨방에서 탈출해, 관모의 꽃실들을 마치 헬리콥터의 날개처럼 사용해 상승한다. 과학자들인 이 씨들이 그렇게 멀리 날 수 있는 이유는 이들이 지닌 관모 때문이 아니라, 관모와 관모 사이의 간격 때문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들은 고성능 카메라를 장착해 이들이 비행하는 모습을 촬영했다.

바람이 관모를 들어 올리면, 그 빙빙 돌고 있는 중앙으로 소용돌이와 같은 ‘원형 와류’를 만들어 씨를 끌어올린다. 공기가 잘 통하지 않는 낙하산 구조를 지닌 다른 씨들과 비교해, 사방에서 공기가 자유롭게 침투할 수 있는 관모 구조를 지녀, 씨를 하늘로 끌어 올리는데 4배 이상 효과적이다. 민들레 씨가 지닌 관모의 열린 구조는 안정적 비행을 위한 최적의 조건이다.

민들레 씨는 자신의 생존을 위해, 필요한 비행을 위해 최적화된 모습으로 진화했다. 그 민들레 씨는 자신이 바람을 타고 상승하도록 진화했다. 인간도 자신에게 주어진 사적인 삶을 최선으로 개조해야 한다. 짧은 인생을 살면서 자신이 선택한 분야의 최고 전문가가 되도록 스스로 변신해야 한다.

우리는 대부분 자신의 생계와 관련된 직업에 있어 전문가다. 혹은 자신의 오감을 자극하는 쾌락에 관련된 취미의 전문가다. 로마 시대 스토아 철학자이자 정치가인 세네카는 인간이 자신의 삶이라는 예술의 전문가가 돼야 한다고 말한다.

그의 장인 파울리누스는 로마제국 전체의 곡식 창고를 관리하던 최고위직 관리였다. 그러나 정치적인 사건에 휘말리자 그 일에서 물러났다. 세네카는 파울리누스에게 ‘인생의 짧음에 관하여’(18.3b)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저를 믿어보십시오. 당신의 삶의 ‘재무상태표’를 만드는 것이, 로마제국 곡식 시장의 ‘재무상태표’를 만드는 것보다 중요합니다.” 세네카는 장인에게 인생에서 자신의 생계유지를 위한 직업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그가 내면의 삶의 에너지를 조절해, 그의 삶에 있어 최선이 무엇인지 알아내고, 그것에 몰입하는 삶이다. 그런 삶은 그에게 평정심을 선물할 것이다.

자연의 식물들과 동물들은 가장 간결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진화하면서, 자신의 존재를 더욱 빛나게 만들었다. 인간만이 자신의 삶에 예술가나 전문가가 되지 못하고, 자신이 아닌 타인과의 경쟁에 내몰려, 타인의 장단에 맞춰 춤을 추다 허송세월한다.

오늘 내 삶에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나는 저 민들레 씨처럼, 씨방을 탈출해 치고 올라갈 것인가? 오늘도 지난 석 달간 그런 것처럼, 코로나19의 확진자수와 사망자수를 확인하거나, 아니면 지난 30년 동안 그랬던 것처럼 TV나 휴대폰을 통해 뉴스 속보를 멍청하게 반복하며 들을 것인가?

눈을 돌려 다시 마당을 보니, 아침에 있었던 민들레 하얀 관모 씨들이 모두 바람에 날아가 버렸다. 그들은 신나는 미래를 위해 모험을 시작한 것이다. 나는 내 삶이 정말 중요한 것을 알고 있고, 그것을 수행하기 위해 최적화된 몸, 정신, 그리고 영혼을 소유하고 있는가? 나는 내 삶의 ‘재무상태표’를 점검했는가?

배철현 고전문헌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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