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당신의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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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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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니오 모리꼬네의 ‘영화 음악 컬렉션’
오성은 작가
-부고

몇 해에 걸쳐 시민평론가로 부산국제영화제에 참가한 경험이 있다. 2007년부터였고, 나는 대학교 3학년이었다. 무엇을 하건 나 자신을 가혹하게 몰아붙이던 시절이었으니, 학업 성적과는 반비례하게도 영화에 대한 애정은 드높아갔다. 하루에 4편 이상의 영화를 몰아보며 영화를 즐기던 나날이었다. 하긴, 즐긴다기보다는 집착했다는 편이 더 어울리겠다. 나는 영화제에 참가한 여러 부류의 사람들과 영화를 보고 토의하고 술을 마시고 밤을 지새웠다. 만나고 헤어지는 단순한 관계 속에서도 영화에 대한 교집합만은 우리를 하나의 구성원으로 만들었다. 영화라는 집은 꽤 넓고 높아서 우리에게 모두 안락한 소파를 내어주었고, 또한 함부로 내쫓지도 않았다. 영화 앞에서만은 배우도, 감독도, 프로그래머도, 관객도 모두 공평한 사람들이었다. 말하자면 친구라는 표현이 가장 좋겠다.

‘나, 엔니오 모리코네는 이 세상을 떠났다(Io Ennio Morricone sono morto).’

2020년 엔니오 모리꼬네가 7월 6일 오전 로마에서 향년 91세로 별세했다. 그는 직접 쓴 자신의 부고를 통해 가깝게 지냈던 모든 친구와 한동안 만나지 못했던 모든 이들에게 깊은 애정을 담아 인사한다. 더불어 가족에 대한 사랑, 그리고 아내에 대한 애틋한 마음과 안타까움을 덤덤하게 고한다. 단 몇 줄의 문장만으로 그는 많은 이야기를 전한다. 어쩌면 그의 음악만큼 긴 이야기를. 그는 우리 시대 최고의 영화 음악가이자, 위대한 작곡가, 무엇보다 영화를 사랑하는 우리들의 친구였다.



-시네마 천국

그의 음악에 빠진 영화광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그를 사랑한다. 어쩌면 그것은 영화를 사랑하는 방식과 닮았고, 확장해선 세상의 소리를 받아들이는 방식과도 상응할 것이다. 나 역시도 그의 음악에 빠져 지내던 시절이 있었고, 여전히 유효한 그 시절의 향기가 어느 날 하루를 유달리 만들어주기도 한다. <미션>의 오보에와 <황야의 무법자>의 휘파람과 <러브 어페어>의 피아노. 독주와 오케스트라, 흥얼거림, 어떤 단조와 종소리, 혹은 무음. 어느 형태이건 그를 사랑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내가 거의 유일하게 연주할 수 있는 기타 연주곡 두 곡이 모두 엔니오 모리꼬네의 곡이라는 건 나의 음악 세계가 얼마만큼 그를 향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척도가 된다. 그런 의미로 ‘Love Theme’(<시네마천국> ost)과 ‘Playing Love’(<피아니스트의 전설> ost)는 닮아있다. 공교롭게도 주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의 영화라는 점이 그렇고, 무엇보다 곡의 제목에 Love가 들어간다는 사실이 특별한 의미로 남아있다.



-Playing Love

2007년 영화에 빠져 지내던 그해,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장에서 엔니오 모리꼬네를 보았다. 내가 본 그의 모습이 내가 기억하고 추모할 수 있는 그이기에 나는 나의 2007년을 떠올린다. 세상일에 뾰로통하고 고집이 세며 지기 싫어하던 철부지의 나. 나는 영화를 통해 타인을 알아가기 시작했고, 타인의 목소리를 들었으며, 타인의 삶을 엿보았다. 동시에 나는 영화를 통해 친구를 만났고, 그들의 친구가 되기도 했고, 친구와 결별하기도 했다. 영화를 통해 세상을 보고, 세상을 통해 영화를 공부하던 나날, 그 나날이 눈앞에 펼쳐져 나는 잠시 행복한 기분을 느끼던 나를 느낄 수 있게 된다. 말하자면 나에게 영화는 자기반영적 예술의 산물인 셈이다. 같은 맥락으로 내가 듣고 사랑하고 연주하게 된 음악들은 내 삶의 떼려야 뗄 수 없는 일부가 되어버렸다. 나는 사랑의 테마를, 사랑의 연주를 통해 사랑을 알고 배우고 이해하고자 했던 것이다.

<피아니스트의 전설>의 주인공 ‘1900’은 결국 세상으로 향하지 못하고 검은 건반과 흰 건반과도 같은 피아노 속에서, 자신이 태어난 배 안에서 삶을 마감한다. 그에게 육지는 두렵고 버거운 세상이다. 차라리 고독한 바다가 마음의 안정과 평온을 주는 고향이다. 하지만 단 한 번, 그가 사랑에 빠진 사람의 표정으로 연주한 ‘Playing Love’는 여전히 내 마음속에서도 큰 울림으로 남아있다. 엔니오 모리꼬네가 만든 이 곡이 ‘1900’의 손끝에서 스크린을 통과해 영화관 너머로 저 하늘로 창문 안으로 내게로 온다. 그가 들려주는 사랑이 우리의 가슴으로 온다. 우리는 모두 당신의 친구. 죽음은 다만 작은 어둠일 뿐이며, 우리는 다시 더 큰 세계에서 만날 것이다. 그곳에서도 당신의 음악이 들려오면 좋겠다. 오성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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