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우주와 바늘의 거리두기
  • 경북도민일보
검은 우주와 바늘의 거리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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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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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과의 사회적 거리두기
음악과 멀어지다

열여덟 살의 나는 평생 음악 곁에 머물겠다고 다짐했지만,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받아들이는 중이다. 음악도 시간이고, 여유라는 걸 그때는 몰랐던 탓이다. 조깅을 할 때나 운전할 때라도 곧잘 음악을 들었는데, 이제는 오디오북을 듣거나 친숙한 DJ를 찾아 주파수를 돌리는 게 일상이다. 간혹 컴퓨터나 휴대전화로 콘서트 실황을 찾아보기도 하지만 청음보다는 시청에 가까워졌다. 단골 LP 상점에 발길을 끊은 지도 몇 주나 지났다. 기타는 아예 줄을 빼내어 하드케이스에 넣어버렸다. 그렇다고 그 시절로 돌아가서는 미래를 희망차게 바라보고 있는 청소년에게 ‘음악 곁에 머문다고? 그거 엉뚱한 생각인걸.’ 하고 핀잔을 주기에도 영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예전처럼 음악과 가까워질 수 있을까.

마음만 달리 먹는다면 일상에서 듣는 모든 소리가 음악이 될 수도 있다. 들을 만한 음악이 없다는 고루한 핑계를 대고 싶었던 시기도 있었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는 건 언제나 뒤늦게 깨닫는다. 음악은 지금 이 순간에도 복제와 변주의 충돌 속에서 자가증식 중이다. 언젠가 인간을 지배하는 건 음악이라고 믿고 싶은 적도 있었다. 그러나 중요한 건 지금의 나는 음악과 거리두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처음 들려오던

처음으로 내 귀를 깨운 건 우리 엄마다. 나에게 무슨 말을 했을까. 셋방살이 당시 주인집에 소음이 될까 봐 이불을 덮고 종일 라디오를 들었다는 우리 엄마 덕에 지금의 내가 라디오 진행자로 살아가고 있는 걸까. 뱃속에 웅크리고 있는 나에게 라디오는 자장가이자 알림, 날씨 정보이자 책, 친구이자 연인, 그리고 세상의 모든 음악이었을 것이다. 처음으로 두 귀가 먹먹해졌던 여덟 살의 기억도 떠오른다. 수영장의 물속 세상은 전혀 다른 소리로 채워져 있었다. 여기와는 다른 저기, 이곳과는 다른 그곳, 이편과는 다른 저편이라는 감각이 온몸으로 와닿던 놀라운 경험은 지금도 작은 공포로 남아 있다. 소리는 나를 외롭게 만들 수도 있고, 안정을 주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두 귀를 열리게 한 건 신해철과 서태지의 음악이었다. 나는 그들의 음악에 동화되고자 걸음을 따라 걷고, 스타일을 변화하며, 말투와 생각까지 카피하기 일쑤였다. 단지 귀가 시킨 일은 아니었다.

처음으로 곡을 쓴 건 21살 때였다. 통기타를 안고 읊조리며 만든 멜로디를 나는 아직 기억하지만, 누구에게도 불러본 적이 없다. 오직 나를 위한 곡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들려주기 위한 곡을 만들고자 용기를 낸 건 버스킹을 시작하고서였다. 후안 룰포의 소설 <날 죽이지 말라고 말해줘>를 읽고 만든 동명의 노래를 두 개의 버전으로 세상에 내놓았다. 소설을 감싸는 불안이라는 주제를 당시 상황에 맞춰서 부르고 싶었다. 사랑을 위한 곡을 쓰기도 했다. 라는 제목은 첫 EP앨범의 타이틀이 되었다. 이후 <연인들의 밤>을 몇 번이나 개사했고, 지금은 새로운 곡을 쓸 결심을 3년 째 하고 있다.



검은 우주와 바늘의 거리

나는 음악과 그리 멀지 않은 사람이 분명하다. LP를 듣고 쓰고 있고, 라디오에서는 영화음악 코너를 진행하고 있다. 곡을 만들어 세상에 발표하고, 그 곡을 길거리에서 부를 수도 있다. 그러나 도대체 무엇이 나를 음악과 멀어지는 기분으로 몰아가고 있는 것인가. 검은 레코드와 스테레오 카트리지의 거리는 그다지 멀지 않다. 톤암은 육중하게 이곳과 저곳을 연결하고, 돌아가는 판 위에서 섬세하게 내려앉을 것이다. 버튼 하나로, 손가락 하나로, 짧은 시간으로, 적은 힘으로 가능한 작업이다. 그러나 나는 검은 판과 바늘의 거리가 무한한 우주처럼 팽창하고 있다는 사실을 경험하는 중이다. 어쩌면 그 간극은 지금보다 멀어져 되돌아갈 수 없을 정도로 벌어질지도 모른다. 그때는 대체 어떤 기분이 들까. 아무런 기분도 느낄 수 없을 것이다. 돌이킬 수 없는 지경이 되어 있을 테니까.

내가 두려운 건 바로 그 지점이다. 음악과 멀어진 채 살아가고 있는 게 당연하게 되어버린 상태, 그조차도 감각 하지 못하는 상태. 그래서 나는 음악에 대해 전보다 더욱 고민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내가 사랑하는 대상과 나와의 구멍을 메우기 위해서라도 이 시간은 필요하다. 다투지 않았지만 화해가 필요하고, 미워하지 않았지만 사랑이 필요하다. 어쩌면 그건 음악의 본류인지도 모른다. 자신을 갈구하게 만드는 힘, 음악이 인간을 지배할 수도 있다고 말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인간이라는 종을 불러들일 필요도 없다. 음악은 나를 지배할지도 모른다. 분명 그럴 것이다. 그러니 음악을 다시 생각해야 한다. 음악을, 바로 어제의 음악과 오늘의 음악을, 그리고 미래의 음악을…….

오성은 작가(동아대 한국어문학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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